죽을 만한 짓을 했나…‘뉴라이트 감정사’의 과거사 정리 [본헌터㊼]

2023.12.11 방영 조회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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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본헌터’는 70여년 전 국가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집단살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무데나 버려져 묻힌 이들과,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라진 기억을 찾아나선 이들이 주인공이다. 매주 2회, 월요일과 수요일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다. 극단 신세계가 글을 읽어준다. 네 이름은 광동이다. 나에게,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광동이다. 대한민국의 장관급 공직자로서 위대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사명을 부여받은 광동이다. 그렇다. 당신이 앉은 그 자리는 위대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과거의 범죄를 반성할 줄 아는 국가의 품격을 가졌음을 당신의 자리가 증명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은 진실과 화해와 통합의 항법장치가 장착된 타임머신의 조종 지휘관으로 임명받았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목적지로 설정하고 과거사의 시공간을 누비는 조종사들을 이끌 자격을 얻었다. 당신의 권력은 죽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붉은 딱지가 붙은 채 비명횡사한 이들의 명예를 구원할 수 있다. 나 역시 구원받고 싶다. 나를 소개한다. 2023년 3월28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산 110번지 성재산 교통호에서 나온 A4-5다. 1950년 가을 느닷없이 이곳에 끌려와 총에 맞아 죽은 뒤 흙에 덮였고, 73년 만에 기적적으로 햇빛을 보았다. 세상 밖으로 나를 끄집어낸 책임자들이 누구인지 하나 둘 따지다보니 끄트머리에 당신이 나왔다. 적지않은 돈을 들여 나에게 광명을 찾아줄 계획을 입안하고 진행한 사업은 바로 타임머신 비행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우리는 매우 깊이 연결돼 있다. 당신에 관한 호기심을 품고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쪼그리고 앉은 채 다른 동료들과 출토된 성재산의 A4-5. 사진 주용성 작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재산에서 처형된 이들의 손목을 묶었던 굵은 군용 통신선(삐삐선)과 탄피, 단추. 사진 주용성 작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처음 발견 당시 나의 흐트러짐 없는 뼈대와 쪼그려 앉은 자세에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처럼, 2022년 12월 당신이 그 자리에 임명된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던가. 세상은 당신을 주목하고 조명했으며, 당신이 과거에 했던 말들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사람들은 ‘뉴라이트 조종 지휘관’이 선발됐다고 했다. ‘뉴라이트’는 오른쪽 방향으로만 휘어져 요동치는 속성을 지녔다고 했다. 이 타임머신에는 항로 이탈을 막는 시스템과 법률, 조종 지휘관의 독단을 견제할 부지휘관들이 있지만 힘에 부칠 거라고 했다. 덧난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소독하기 위해 설계·제조한 타임머신이 고장 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도대체 당신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기에 이런 걱정들이 나온단 말인가. 뜬금없지만, 사랑에 관해 말해본다. 당신이 귀뚜라미를 사랑한다면,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할 수 있다. 당신이 라일락을 사랑한다면, 나도 라일락을 사랑할 수 있다. 당신은 밤을 사랑하는가. 나도 밤을 사랑하겠다.(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당신은 승만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승만을 사랑…하기는 곤란하다. 어느 책에선가 당신은 승만이 독재자라는 세간의 평가에 관해 강력한 반론을 폈다. 승만이야말로 건국과 민주주의 혁명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압권은 학살과 처형에 관한 대목이었다. “대규모 학살과 처형이 반드시 동반되게 마련이라는 것이 독재의 특징”이라면서 당신은 스탈린, 히틀러, 무솔리니, 마오, 일성, 폴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승만은 독재자이기는커녕, 그 반대라고 했다. 2023년 11월, A4-5가 나온 성재산 교통호 북쪽 옆에서 유해가 추가로 22구 나왔다. 머리뼈 안에 나뭇가지가 들어가 있는 모습. 고경태 기자 고경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23년 11월, A4-5가 나온 성재산 교통호 북쪽 옆에서 유해가 추가로 22구 나왔다. 조사원들이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50년 전쟁이 터지자마자 ‘적에게 동조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국 팔도에서 수많은 국민보도연맹원들이 국가에 의해 계획적인 죽음을 당했다. 그해 9·28 수복과 1951년 1·4후퇴 직후에는 부역혐의자로 지목된 이들과 그의 가족들이 떼죽음을 맞았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당시 우리의 대통령은 승만이었다. 나는 어떤 죄를 지었을까. 1950년 인민군 점령기에 흠을 잡히거나 미움을 샀을 것이다. 나는 나쁜 놈일 수도 있다. 명명백백한 사실은 재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죽은 뒤 함부로 버려져 70년 이상 방치됐다는 것이다. 당신의 말대로, 승만은 자랑스러운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었다. 민주공화국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의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1948년 대한민국 헌법 22조). 전쟁이 터지고 계엄령이 선포됐을 때도 군법회의에 회부될지언정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죄를 지었든 재판받을 권리는 존엄하다. 재판 없는 나의 최후는 존엄하지 않았다. 내가 ‘학살’이라 쓰면 당신은 ‘평화’라 읽는다. 2023년 6월9일의 어느 강연장에서 당신은 나와 같은 이들의 죽음에 관해 이렇게 평했다. “침략자에 맞서서 전쟁상태를 평화상태로 만들기 위해 군인과 경찰이 초래시킨 피해였다”고. 새로운 관점이다. 나는 전쟁상태를 평화적으로 전환하려는 군인과 경찰에 의해 불가피한 피해를 입은 셈이다. 당신이 승만을 스탈린, 히틀러, 무솔리니, 마오, 일성의 반열에 세우지 않은 수수께끼가 풀렸다. 당신의 오묘한 말은 계속되었다. 2023년 10월10일에는 “전시에는 재판 없이 죽일 수 있다”고 했다. 전시에는 군 지휘관에 의해 민간인에 대한 즉결처분도 가능하다고 했다. 당신의 놀라운 관점에, 사람들은 법적 근거를 궁금하게 여겼다. 나 역시 알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당신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질문이 쏟아지자 “즉결처분은 즉결처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라면서 말을 바꿨다. 승만을 사랑하는 당신은 일성을 증오한다. 동족상잔 비극의 출발점이 일성의 침략전쟁이라는 신념은 확고하다. 당신이 일성을 증오한다면, 나도 일성을 증오할 수 있다. 그러나 증오스러운 일성이 침략을 했다고, 승만의 추종자들이 나를 부역자로 몰아 즉결처형할 권리는 없다. 승만은 나를 비롯한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을 보호해줄 책임이 있었다. 부역자로 몰아 죽이고 싶다면, 부역자임을 확인하고 심판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인가. 당신은 또 의욕적으로 말했다. “(희생자들 중에서) 부역자가 있는지 세심히 살피겠다”고. 2023년 5월25일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70여년 전에 못 살폈으니, 이제라도 살펴보겠다는 뜻인지 알쏭달쏭할 뿐이다. 2011년 2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기뻐하던 보경. 보경이 만든 수업교재가 이적 표현물이라는 광동의 감정 결과에도 1심, 2심, 대법원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건 ‘색출’에 다름아니다. ‘색출’은 당신에게 친근한 분야다. 한때 감정사였으니까. 보경을 기억하는가. 2008년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된 경남 산청간디학교 교사 보경 말이다. 보경은 자신이 펴낸 현대사 수업교재가 이적표현물이 분명하다고 판단한 검찰에 의해 반국가사범으로 몰렸다. 검찰을 위해 감정을 해준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당신이 즐겨 쓰는 말에 빗대자면, 공안검찰의 부역자일까. 당신은 “보경의 문건이 북한 공산전체주의 유지와 옹호라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는 감정 결론을 내렸다.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이적행위’라는 거였다. 이적이란 무엇인가. 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부역’과 쌍둥이 말이다. 당신은 2010년 1월 보경을 피고인으로 한 재판에 나와 “제가 검찰 측 요청으로 지난 10여년간 20여건 이상의 감정을 한 경력이 있다”고 자부했다. 이제 당신은 보경 대신 한국전쟁기 군경에 의해 죽은 수천여명의 희생자들을 들여다본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적행위를 했는지, 즉 죽을 만한 짓을 해서 죽은 건 아닌지 여부가 감정의 핵심이다. 그 서막이 올랐다. 당신은 타임머신에 진실규명을 요청한 1950년 경북 영천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6명을 특별감정했다. 부지휘관들과 언론의 비판에도, 기어이 이들을 부역자로 몰아가는 중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고 있다. 당신의 전적을 음미해본다. 안타깝게도 보경에게는 0대3 완패했다. 1심, 2심, 대법원 내리 세 번 모두 무죄였다. 이 정도면 감정의 신뢰성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당신의 자리는 굳건하다. ‘뉴라이트’의 명망가이자 이데올로그로서 대통령 석열에게 받는 이쁨과 사랑 덕분인가. 뉴라이트는 검찰과 함께 석열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이라고 한다. 희생자들이 당신에게 위로와 구원을 받는 길은 멀어 보인다. 당신이 감정사의 태도를 취하는 이상, 불안은 계속된다. 이제 나를 꺼내준 사람을 만나 위로를 받아야겠다.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라는 책을 썼다. 2000년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미군 비밀문서를 최초 보도했고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베트남어판을 냈다. 베트남전에 이어 이번엔 한국전쟁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한겨레의 벗이 되어주세요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기획] 누구나 한번은 1인가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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