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예 암살 규탄하는 이란 시위대
(테헤란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팔레스타인 광장에서 현지 시위대가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암살을 규탄하며 이란 국기와 팔레스타인 국기 등을 흔들고 있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자국에서 하니예가 암살된 것과 관련,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2024.08.01 passion@yna.co.kr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하마스 일인자 이스마일 하니예 암살로 불거진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은 자국 수도에서 일어난 하마스 지도자 암살을 '처벌'하고자 이스라엘에 보복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이스라엘은 전면전 대비는 물론 '선제타격론'까지 거론하며 맞서고 있다.
양측이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이란이 하루 이틀 새 공격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미국과 주변 아랍국가는 물론 러시아까지 이란과 접촉하며 확전을 막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 이란 "처벌" vs 이스라엘 "공격하면 대응" 맞불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은 하니예 암살과 관련해 이스라엘에 보복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날 테헤란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안보서기와 회담하면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결코 역내 전쟁과 위기 확대를 추구하지 않지만 이 정권(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와 불손함의 대가를 분명히 치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도 이날 테헤란 주재 각국 대사·공관장들과의 회의에서 "우리는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를 원치 않지만 이를 위해서는 침략자(이스라엘)를 처벌하고 시온주의 정권에 대한 억제력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칸아니 대변인은 이어 "(이스라엘의) 그러한 공격을 대응 없이 넘길 수 없다"며 "이슬람공화국(이란)의 대응은 확고하고 결정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칸아니 대변인은 또한 국제사회가 중동 안정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면서 미국에 이스라엘 지원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슬람협력기구(OIC)가 이란의 요청으로 오는 7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하니예 암살과 이란의 대응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OIC에는 이슬람권 57개국이 속해 있다.
테헤란서 회담하는 이란·요르단 외무장관
(테헤란 EPA=연합뉴스) 알리 바게리 이란 외무장관 대행(왼쪽)이 4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오른쪽)과 회담하고 있다. 사파디 장관의 이란 방문은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암살 사건 이후 이란과 이스라엘 간 전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2024.08.05 passion@yna.co.kr
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사령관도 이스라엘이 "적절한 시기에 처벌받게 될 것"이라며 "그들(이스라엘)이 강력한 대응을 받으면 (이란이 어떻게 보복할지에 대해) 잘못 계산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보복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천명했다.
이란의 잇단 경고에 이스라엘은 자국 공격 시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맞불을 놓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주례 각료회의에서 "우리는 공격과 방어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가 돼 있다. 우리를 향한 어떠한 공격행위에 대해서도 무거운 대가를 물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같은 날 밤 회의에서는 '억제적 수단'으로써 이란을 선제타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이스라엘 현지 매체 와이넷(Ynet)이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 소속으로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 외무·국방위원장인 율리 에델스테인도 "주도권을 잡지 않고 앉아서 조바심치는 것은 우리의 품격에 못 미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연설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 '공격 임박' 관측 속 국제사회 '확전방지' 외교전
양측이 브레이크 없는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이란의 보복공격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잇따라 제기됐다.
미국 악시오스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전날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들에게 이란과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이 "이르면 24∼48시간 안에 시작될 수 있다고 통보했다.
WSJ도 아랍국가 외교관을 인용, 한 이란 당국자가 5일 이란의 보복공격이 "임박"해 앞으로 48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WSJ은 또한 미국 당국자를 인용해 이란이 이날 오전 항공당국과 조종사들에게 GPS와 항법신호가 중단될 수 있다는 경고를 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지난 4월 이스라엘 본토 첫 공격 당시에도 비슷한 경고를 발표한 바 있다고 이 매체는 설명했다.
다만 이란은 같은 날 오후 이 같은 보도를 부인했다.
이처럼 역내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중동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며 확전을 막는데 외교적 노력을 쏟고 있다.
백악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5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이란 및 대리세력의 위협, 미군 주둔 이라크 공군기지 공격, 이스라엘 방어 지원 노력, 역내 긴장 완화를 위한 외교 노력 등 중동 상황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의에 앞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통화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즉각적인 휴전과 인질 석방 협상 등에 대해 대화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
[AP=연합뉴스]
블링컨 국무부 장관도 이날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 겸 외교부 장관 및 바드르 압델라티 이집트 외무장관과 통화해 확전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미국은 이스라엘을 공격으로 방어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이란에 전달해 달라고 촉구했다.
카타르와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협상을 중재하는 국가들이다.
블링컨 장관은 또한 워싱턴DC에서 페니 웡 호주 외무장관과 협력 문서 서명하기에 앞서 중동 상황과 관련해 "모든 당사자는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앞으로 몇 시간, 며칠 안에 모든 당사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G7 국가들도 이란 측과 접촉해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이스라엘 공격 수위를 제한하라고 촉구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정통한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과 주변 아랍국들은 전날 이란을 방문한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을 통해 이란을 자제시키기 위한 '당근'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자제할 경우 미국은 핵 협상 재개를, 이집트 등 아랍국가들은 이란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DPA통신이 보도했다.
DPA는 국제사회의 제재로 경제난에 처한 이란에 두 가지 보상 상당히 유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대한 이란 측의 공식 반응은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대립하는 러시아도 직전 국방장관인 세르게이 쇼이구 안보서기를 이날 테헤란에 급파했다.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을 차례로 만난 쇼이구 서기가 이란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란과 군사·안보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하는 관계이면서 이스라엘과도 친밀하다는 측면에서 확전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건넸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쇼이구 러시아 안보서기 접견하는 이란 대통령
(테헤란 AFP=연합뉴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오른쪽)이 5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안보서기를 접견하고 있다.[이란 대통령실 제공]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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