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비상계엄 전후로, 계엄군 준비 정황부터 철수까지 당시 지휘관들의 진술을 통해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박희재 기자가 현재까지 공개된 증언을 토대로 계엄군의 시간표를 재구성해봤습니다.
[기자]
45년 만에 등장한 계엄군,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첫 임무 부여는 최소 계엄령 선포 이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곽종근 / 특수전사령관(10일) : 6개에 대한 임무를 받은 시점이 일요일 12월 1일 정도였습니다.]
[이경민 / 국군방첩사령부 참모장(10일) : (12월 1일 날 사령관이 휴가 후 돌아와서 북한 도발에 임박한 빌미로 대령급 실장들에게 통신상으로 지시 대기를 내렸지요?) 예, 그렇습니다.]
국회로 투입될 예정이던 특수전 부대원들은 계엄령 선포 몇 시간 전
평소보다 강도가 높은 비상소집 훈련이 진행됐습니다.
[김현태 / 707 특수임무단장(9일) : 그날 저녁 7시 50분에 비상을 걸었습니다. 저희는 1시간 안에 출동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계엄 직후 발표된 포고령은 이즈음까지 차근차근 검토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작성했는지, 여전히 미궁입니다.
[박안수 / 육군참모총장(당시 계엄사령관) : (포고령 본인이 작성한 것 맞아요? 윤석열 대통령이 작성해 준 거 아니에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12월 3일 밤 10시 28분, 대통령의 기습적인 계엄선포.
[대통령(3일) :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직후 최소 6곳으로 투입된 계엄군들의 진입.
하지만, 국회에서 계엄해제 요구안이 의결되고, 비상계엄은 2시간 반 만에 막을 내립니다.
[우원식 / 국회의장(4일) : 재석 190인 중 찬성 190인으로 비상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은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계엄 당시 국회로 투입된 특수전 대원들은 인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거부했고,
중앙선관위로 향했던 방첩사 요원들은, 현장을 이탈해 편의점으로 향하는 등 지시를 소극적으로 이행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새벽 3시가 다 되어서 국회를 떠난 특수전 대원을 비롯해, 수도권 각지에서 '철수 작전'이 이뤄졌습니다.
대통령과 장관의 지시를 대부분 따랐던 계엄군 핵심 지휘부들.
결정적인 순간에 항명한 정황도 눈에 띄지만, 자의든 타의든 '계엄 가해자'로서 그 심판 자체는 불가피해졌습니다.
[김현태 / 707 특수임무단장(9일) : 부대원들은 피해자입니다. 전 김용현 국방장관에게 이용당한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입니다. 부대원들은 죄가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무능한 지휘관의 지시를 따른 죄뿐입니다.]
YTN 박희재입니다.
YTN 박희재 (parkhj022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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