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새해가 밝았지만 지난해 12월 있던 내란 사태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객기 참사를 뉴스서 보자마자 신원 감식에 힘을 보태려 달려간 40년 경력 법치의학자는 여객기 안에 자랑스러운 제자도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먼저 신진 기자입니다.
[신진 기자]
달려온 가족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어떡해, 어떡해.]
이름이 불린 순간 기뻤고 곧 절망했습니다.
[살았다고 확인하는 거야? 살았다고?]
179명 이름이 벽에 붙었습니다.
[난 몰라, 안돼 안돼.]
검안실 불은 24시간 안 꺼졌습니다.
[윤창륙/전 조선대 치의학과 교수 : 빨리 희생자들을 유족에게 돌려드려야 된다는 압박감.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어요.]
40년 경력 법치의학자는 뉴스를 보자마자 현장에 자원했습니다.
[윤창륙/전 조선대 치의학과 교수 : 아찔했고요. 안타깝지만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겠구나… 부르기 전에 제가 먼저 가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남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윤창륙/전 조선대 치의학과 교수 : 제 치과대학 제자도 한 명 있었습니다. 머리로 치료하지 않고 가슴으로 치료하던…]
인력은 모자라고 작업은 힘들었습니다.
[윤창륙/전 조선대 치의학과 교수 : 40분 가까이가 지문을 찾을 수 없었고요. 또 이 조각난 시신들을 맞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일 밤을 샜고 날이 밝으면 자원봉사자들이 해주는 밥을 먹었습니다.
[윤창륙/전 조선대 치의학과 교수 : 늘 식사를 밖에 나가서 사 먹고 그러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낭비가 됐거든요.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이게 빨리 끝날 수 있었고요.]
참사 9일 만에 179구의 시신을 인계했습니다.
유족들은 고개 숙였습니다.
[박한신/유가족 대표 : 국회의원분들은 물러나 주시고 고생하신 정부 관계자분들은 앞으로 조금만 나와주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수없이 다닌 참사 현장에서 처음 본 광경이었습니다.
[윤창륙/전 조선대 치의학과 교수 : 이 성실하고 순진하고 법 없이 살 분들이 이렇게 돌아가셔야 하는지, 그 답을 아직 못 내리겠어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살아가야 합니다.
[윤창륙/전 조선대 치의학과 교수 : 망자들에 대해서 우리 산 자들은 책임이 있는 거예요.]
[앵커]
전문가들은 사실상 전 국민이 재난을 당한 거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국회와 무안공항 등에서 무작위로 시민들을 만나 외상후 스트레스 자가진단을 해보니 10명 중 7명 꼴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심각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어서 임지수 기자입니다.
[임지수 기자]
[들어오지 마! 나가, 나가!]
4년 차 국회 비서관 장대연 씨.
계엄군을 몸으로 막았던 그 곳은 매일 출근하는 일터입니다.
[장대연/국회 비서관 : 떠오르죠. 매일 퇴근할 때 저 정문으로…]
다 지나갔다 생각했지만 마음에 흔적이 남았습니다.
[장대연/국회 비서관 : 요새 잠을 잘 못 자요. 언제 또 이상한 행위가 일어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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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 앞에 고개 숙인 시민들 마음 속 뭔가가 이전과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김아름/충남 서산시 성연면 : 울분에 차서 울컥울컥한 일이 자주 일어나거나…]
[김활란 마리아/서울 신길동 : 가슴이 철렁했고…어려웠어요.]
온 사회가 겪는 일종의 '집단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은 늘고 있습니다.
[백종우/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진료 끝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더라고요. (환자들이) 밤에 계속 각성하고 낮엔 도대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시민 30명을 만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자가 진단을 해봤습니다.
국회와 무안국제공항, 대통령 관저 앞과 분향소에서 무작위로 인터뷰를 부탁했습니다.
유가족은 제외했습니다.
23명이 3단계 가운데 '심각 수준'을 보였습니다.
일상 생활이 어렵고 전문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백종우/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우리 마음에 댐이 있다고 쳤을 때 스트레스가 지금 연속적으로 오는 거죠.]
이런 현상,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정상적 반응'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입니다.
치료 방법은 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백종우/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이런 시기에는 옆에 사람이 있어야 견딥니다. 서로가 이 고통을 나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함께 분향소를 찾고 광장을 채우는 것도 일종의 '사회적 치료'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참사와 갈등을 막지 못하면 회복할 시간 자체가 모자랄 수 있습니다.
[VJ 이지환 허재훈 / 영상편집 김영석 / 영상디자인 조승우]
신진 기자, 임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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