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중대범죄 피해자 유족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래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정부 지원제도는, 사실상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데요.
범죄피해 연속기획 마지막 순서로, 생계문제로 이중의 고통을 겪는 피해유족의 현실을 취재했습니다.
남효정 기자입니다.
◀ 리포트 ▶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남성이 흉기를 든 채 쇼핑몰 한 가운데를 지나갑니다.
놀란 시민들이 황급히 몸을 피합니다.
20대 남성이 차를 몰고 인도를 덮친 뒤 흉기를 휘둘러 두 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친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사건.
아르바이트를 끝낸 뒤 집에 가던 스무 살 대학생 김혜빈 씨는 이날 가해자의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을 황망하게 떠난 보낸 부모님의 삶은 그날 멈춰버렸습니다.
[故김혜빈 씨 어머니 (음성변조)]
"이제 밖에 나가면 23년 8월 3일인 거예요. 맨날 그날인 거예요."
딸을 향한 그리움, 가해자를 향한 분노, 그리고 세상을 향한 원망은 부모님을 극심한 우울감에 빠뜨렸습니다.
제대로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는 극도의 무기력 속에, 그동안 해온 자영업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故김혜빈 씨 어머니 (음성변조)]
"마음의 회복도 안 되고 다 황폐해졌어요. 먹고 사는 게 자체가 구차스럽고."
생업이 끊긴 뒤 가정 경제는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사업을 위해 받았던 대출금의 이자는 계속 쌓여만 갔고,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받은 카드 현금서비스가 늘어가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故김혜빈 씨 아버지 (음성변조)]
"이자 내고 또 다른 카드로 돌리고 이렇게 돌리고 있는 상태인데, 원금은 계속 그대로니까 갚아야 할 돈이… 해결이 안 되고 있는 거죠."
사건 후 1년여 만에 부모님은 '범죄피해자 원스톱 솔루션센터'를 찾았습니다.
범죄 피해자를 법률·경제·심리 등 다방면에서 돕기 위해 정부 14개 기관이 모여 지난해 7월 문을 연 곳이었습니다.
여기서 알게 된 범죄피해자 지원 대출상품은 4개.
하지만 그 중 실제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4개 대출상품의 신용평점 요건은 하위 20%.
가정경제가 더 무너져 신용평점이 하위 20% 아래로 떨어져야만 비로소 돈을 빌릴 수 있는 거였습니다.
[故김혜빈 씨 어머니 (음성변조)]
"대출금 제때 갚고 성실하게 살았는데, 이 성실함이 걸림돌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자괴감이 더 드는 거예요. 저희는 밑바닥까지 떨어져야 하는 거예요."
끔찍한 범죄를 겪은 가정이 일상을 회복하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건 일반적인 상황.
주로 생계를 책임져온 가족이 희생됐을 경우 그 고통은 더 커집니다.
['일본도 살인사건' 희생자 부인]
"이제 제가 생계를 꾸려서 나가야죠. 아이들 학비 같은 경우는 신랑이 그래도 남겨준 퇴직금 뭐 이런 걸로…"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하지 않는다면, 무고한 범죄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MBC뉴스 남효정입니다.
영상취재: 남현택, 우성훈 / 영상편집: 이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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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취재: 남현택, 우성훈 / 영상편집: 이유승
남효정 기자(hjhj@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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