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서울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4일 오후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7층 소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21일(현지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상 유일 분단국이 자리한 한반도의 평화를 간절하게 기원했다.
평화의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몸소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했지만 끝내 이북 땅을 밟지는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제부터 북한에 가고자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수년 전에 이런 의사를 직접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회가 되면 북한에 꼭 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사가 부임 후 2018년 2월 16일 바티칸 사도궁을 찾아가 교황에게 신임장을 제출한 뒤 독대하는 자리에서 '북한에 직접 가서 동포들을 축복하면 한반도 평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권했더니 교황이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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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교황이 한국 정부 당국자에게 방북 의지를 직접 밝힌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이 사실을 정부에 긴급하게 보고했다고 회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북 의사를 거듭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2018년 10월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지난달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교황을 만나 뵐 것을 제안했더니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의 공식 초청장이 오면 갈 수 있다"고 답하면서 관심이 고조됐다. 2021년 10월 바티칸에서 문 대통령을 다시 만난 교황은 "초청장을 보내주면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평화를 위해 나는 기꺼이 가겠다"고 방북 의지를 재확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문재인
(바티칸=연합뉴스) 2021년 10월 29일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교황청 제공=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교황은 2022년에는 KBS 인터뷰에서 "나를 초대해달라. 그러면 거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교황청은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 접촉하는 등 여러 경로로 방북 성사를 위한 방안을 모색했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이백만 전 대사는 방북이 실현되지 않은 것이 북한의 셈법이나 국제 정세와 관계가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종교적인 목적으로만 교황을 초청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의 입장에서 교황 초청은 매우 좋은 카드이므로 북미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서기 전에는 쓰지 않을 수 있다. 아직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북 성사 여부와 별개로 한반도 평화 정착을 간절하게 기원했다.
2014년 8월 14일 성남 서울공항에 영접을 나온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하자 교황은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박근혜
(성남=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영접 나온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자료사진]
같은 날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함제도 신부에게는 "북한의 결핵 환자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하는 등 북한의 열악한 의료 상황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인 2023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앞으로 보낸 강복 메시지에서는 "수많은 전쟁과 무력 충돌은, 공동체들 안에서 그리고 민족들 사이에서 정의와 우호적인 협력을 수호하고 증진하려면 끊임없는 경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비극적으로 상기시켜 준다"며 "평화의 '예언자'가 되도록 모든 한국인을 격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1978∼2005년 재위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방북 가능성으로 주목받았지만 불발에 그쳤다.
가톨릭 신자인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00년 3월 초 한국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교황청을 국빈 방문해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났다.
그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 한반도 평화에 대단히 기여할 수 있고 아시아 또는 국제평화를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효과와 영향과 축복이 있을 것"이라며 교황에게 방북을 제안했다.
당시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직 (북한에 갈) 계획은 없으며 그렇게 될 수 있으면 기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요한 바오로 2세와 김대중
(바티칸=연합뉴스) 2000년 3월 4일(한국시간) 오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
같은 해 6월 평양을 방문한 김 대통령이 방북에 관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생각을 전하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교황의 나이를 물은 뒤 "그렇다면 오시라고 하라"며 간접적으로 교황을 초청했다고 당시 청와대 측이 밝혔다. 이후 교황청 공보실은 남북한 양측의 초청을 공식 접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를 인정하고 가톨릭 신부의 입북을 허용하라는 교황청의 요구에 관해 북한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북은 실현되지 못했다. 북한은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인권이나 종교의 자유 문제가 대두할 가능성을 염려했다는 해석도 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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