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명예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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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21일(현지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12년 재위 기간에 남긴 큰 유산으로 가톨릭교회의 '개혁'이 꼽히지만, 그 뜻을 다 이루지는 못한 채 후대에 과제로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초의 남미 출신이며 예수회 출신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후 교회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소외된 이들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며 포용과 이해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냈다.
동성간 결합에 대한 사제들의 비공식 축복을 허용하고 가톨릭교회가 인정하지 않는 이혼 후 재혼자의 성체성사 허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교황청 고위직에 여성을 잇달아 임명하는 등 교회 내 여성의 역할을 늘리려 했고 평신도의 역할 확장에도 관심을 뒀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자 사설에서 "교황은 성(性)과 신앙, 결혼에 관한 의문에 관한 교리를 바꾸지는 않았으나 관용과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논조와 언어를 바꿔놨다"고 평가했다.
개혁적 목소리는 사회 문제에도 적용됐다. 기후변화와 빈부격차를 윤리의 문제로 접근하며 선진국에 도덕성 회복을 주문했고 미국 등 서방 주요국의 반(反)이민 정책을 거듭 비판했다.
그러나 교황이 목소리를 낸 만큼 실질적인 변화를 일구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민감한 '문화전쟁'을 피해 갔다는 지적까지 있다.
영국 더타임스의 프레이저 넬슨 칼럼니스트는 시대에 맞는 교회의 변화, 동성관계 허용, 기혼이나 여성 사제 등 현안에 관해 "가톨릭은 이를 논의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며 "대개혁을 말로는 하지만 실행하지 않는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술이었다"고 비판했다.
개혁을 요구하는 진영에서는 성직자의 성학대 문제에 대한 교황청 대응이 피해자를 위한 정의 실현과 교회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여성 사제 서품에 닫혀 있었다는 비판이 두드러진다.
미국 시민단체 '주교책임성' 배릿 도일 공동 소장은 AP 통신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고 권력을 쥐었던 영역에서 필요한 변화를 거부했고 그 선택이 교회에서 가장 힘없는 구성원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바티캉 성 베드로 광장에서 기도하는 한 수녀
[AP 연합뉴스]
여성서품회의(WOC)는 성명에서 교황의 개혁 시도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여성 서품에 대한 거듭된 폐쇄 정책은 고인이 이뤄낸 경청하는 교회의 배신이었다. 많은 여성에게 고인은 복잡하고 좌절감을 주며 때로는 가슴 아픈 인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새 교황 선출을 앞두고 세간의 이목은 교황의 개방과 개혁 시도가 후대로 이어질지에 쏠린다.
FT는 "교황은 전통적 교리를 훼손했다고 보는 보수파를 화나게 했고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해 진보파도 화나게 했다"며 "이같은 분열은 그의 후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벌어질 경쟁에서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를 앞두고 보수, 진보 양쪽 진영에서 하마평은 무성하다.
한번도 교황을 배출하지 못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유색인 추기경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으며 가톨릭 인구가 많은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에서 교황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작지 않다.
남반구 출신의 많은 유력한 교회 지도자가 사회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콘클라베에서 투표할 자격이 있는 추기경 135명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기 12년간 서임된 추기경은 약 110명이다.
이로 인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지를 이어갈 만한 후임 교황이 선출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교황이 임명했으나 그의 생각이나 정책에 반기를 든 추기경도 있다는 분석도 동시에 나온다.
이탈리아 신문 라푸블리카의 바티칸 전문 기자 아코포 스카라무치는 "(추기경 서임으로) '반프란치스코' 교황이 떠오르기 어려워졌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추기경단의 생각이 하나라는 뜻은 아니다. 교황이 선택한 추기경 대부분은 주요 교구 출신이며 보수파와 진보파가 모두 있다"고 지적했다.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놓인 나무 십자가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만큼 차기 교황 선출과 즉위, 정착 과정에 교회의 분열상이 불가피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텔레그래프는 사설에서 "교황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놓고 여전히 의견 충돌이 심한 교회를 남긴 모순적인 인물로 기억될 것"이라며 "후임 선출을 앞두고 바티칸 내에서 분명히 그런 움직임이 있을 것이고 후임 교황의 임무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FT도 "차기 교황은 배경이나 재능과 관계없이 가톨릭이 직면한 심오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이 조금도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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