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38년 전 오늘은 고 이한열 열사가 민주화 시위 도중 진압 경찰에게 피격을 당한 날입니다.
이 피격 사건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죠.
12·3 내란을 극복하고 열린 추모식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의 가치를 되새겼습니다.
조건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1987년 6월 9일, 희뿌연 최루탄 연기 속에 부축을 받고 있는 청년, 고 이한열 열사입니다.
이한열 열사가 민주화 시위 도중 쓰러졌던 연세대학교 정문입니다.
아래를 보면 그 자리가 표시돼 있는데요.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6월 민주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38년 뒤 교정은 이한열 열사의 희생을 기억하는 문구로 가득 찼습니다.
"학생들이 영정 사진을 들고 입장하시겠습니다."
12.3 내란을 지나고 맞이하는 추모식,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뿌리를 내렸다는 역사가 새삼 현실로 다가옵니다.
[김민결/연세대 2학년]
"비상계엄 사태가 우리 앞에 벌어졌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여전히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고통과 헌신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이승찬·조현수/연세대 2학년]
"민주주의 사회가 항상 위협을 받을 때 앞으로 나가 선 선배님들, 그들의 뜻을 조금 더 받들 수 있지 않을까"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해제하기 위해 국회로 달려갔던 순간도 서서히 역사가 되어 갑니다.
[우원식/국회의장]
"위기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단결된 힘으로 촛불과 응원봉을 밝혀 민주주의를 지켰습니다. 22살 청년 이한열의 정신이 만들어낸 광장이었습니다."
추모식에는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이한열기념사업회 의장 자격으로 참석했으며,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분들은 민주유공자로 예우하는 일에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MBC뉴스 조건희입니다.
영상취재: 전인제 / 영상편집: 김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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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취재: 전인제 / 영상편집: 김은빈
조건희 기자(conditionee@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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