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판 그린뉴딜' 발표 기자회견의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연합뉴스) 경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9일 오후 접수됐다.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이날 서울 종로와 성북구 북악산 일대를 수색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판 그린뉴딜' 기자설명회 정책을 설명하는 박 시장. 2020.7.9 [연합뉴스 자료사진] hkmpooh@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2011년 10월 27일, 당시 만 55세의 시민운동가이던 경남 창녕 출신 박원순의 이름 뒤에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직함이 붙었다.
당시 누구도 그가 한반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래 재임한 서울시장이 되리라 예측하지 못했을 테고, 그의 최장수 서울시장 임기가 극단적 비극으로 끝나리라고 내다본 이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 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서울시장
박 시장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벌였다가 물러난 뒤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공직선거에 처음 도전한 정치 초년생이 곧바로 서울시장 자리를 꿰찬 것이지만, 그는 정계에 입문하기 오래 전부터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는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으며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이 단체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한국 시민운동을 진화시켰다.
이 시기에 일어난 1995년 사법개혁운동, 1998년 소액주주운동, 2000년 낙천·낙선운동 등 굵직한 시민운동마다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그 전에 박 시장은 이름을 날리는 인권변호사였다. 학생운동으로 구속돼 서울대에서 제명된 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어 1982년 사법연수원 12기 수료와 함께 검사로 임용됐다가 1년만에 박차고 나와 '인권변호사의 전설'인 고(故) 조영래(1947∼1990) 변호사와 함께 일하면서 부천서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