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아랍의 향료와 페르시아산 유리 제품 등을 가득 싣고 도착한 아랍 상인들은 신라에 매료됐다. 이들은 평소처럼 당나라 광저우의 무슬림 '번방(蕃坊·외국인 거류지)'에 머물다가 계절풍이 바뀔 때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른 상인들이 말하는 신비의 나라 '알 신라(al-shilla)'의 이야기에 이끌려 신라로 왔다. 이들이 두 눈으로 직접 본 신라는 과연 무슬림이 한번 방문하면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할 법했다. 깨끗한 물, 비옥한 토지, 그리고 금붙이를 가득 매단 신라인들의 풍요로운 모습. 이들은 신라를 떠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무슬림들이 신라에 반해 영구 정착하는 일은 빈번하게 벌어졌다고 한다. 846년 이슬람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드비가 작성한 '왕국과 도로총람'에는 무슬림의 한반도 정착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이 등장한다. 그는 신라를 "금이 풍부하고 자연환경이 쾌적해 무슬림들이 한번 도착하면 떠날 생각을 않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신라의 수도 경주는 당시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슬람 제국의 바그다드를 거쳐 당나라 장안까지 이어진 국제 교역망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었다. 광저우, 항저우 등에 집단 거주하던 무슬림 상인들은 항저우에서 일주일 남짓이면 도착하는 신라를 안방 드나들듯 찾았다. 일부는 신라에 터를 잡고 살며 당나라와 무역하기도 했다.
이들은 오늘날 한국인 무슬림 6만 명을 포함해 모두 26만 명에 이르는 국내 무슬림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무슬림의 역사는 1천200여 년에 달하는 셈이다.
신라왕경 복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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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슬림 상인들, 실크로드 동쪽 끝 '풍요의 땅' 신라 찾았다가 눌러앉아
신라 38대 왕 원성왕(재위 785∼798년)의 왕릉인 '괘릉(掛陵)'에는 특이한 석상 하나가 묘역을 지키고 있다. 바로 서역인(서아시아인)의 모습을 한 무인(武人)상이다. 눈이 깊고 코가 높은 얼굴 형태, 가지런히 다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