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내 인생이 완전히 망쳐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감당할 것은 태산과 같았다. 열심히 애쓰며 애지중지 내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도화지에 검은 먹물을 확 끼얹어 버린 것 같았다. 그 상대방은 말했다.
"어머나 미안해, 고의가 아니었어."
사람들도 말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러게 왜 거기서 그림을 그리고 그래?"
내게 먹물을 끼얹은 '그'는 세상이었고 세월이었고 운명이었고 어쩌면 나 자신이었다.
죽을 용기도 없었다. 몇 번 잘 드는 칼을 손목에 대 보았는데 엷은 상처만 나도 너무 아팠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데 이토록 작은 상처는 또 다른 차원의 아픔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담배를 하루에 세 갑 이상 피워 댔고 술 없이는 잠들지 못했다. 쓸데없이 들은 것은 많아서 혹여라도 내가 스스로 내 생을 마감할 경우 부모님의 슬픔과 아이들이 평생 지고 가야 할 죄책감 혹은 분노가 떠올라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남에게 피해 입히는 것이 몹시도 싫은 사람이어서 그건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살아갈 자신이 없었고 여기서 그만 생을 포기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옳게 보였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하다못해 생명보험이라도 받아서 아이들이 남은 생을 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내가 스스로 죽는 것은 어리석어 보였다.
외출할 때 1.8리터짜리 생수 두 병을 언제나 지니고 다녔다. 침이 나오지 않아 늘 물을 마시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몸은 퉁퉁 부어올라 체중이 난데없이 10킬로그램이나 불어났다. 옷이 맞지 않는 것은 그렇다 쳐도 신발까지 들어가지 않아 커다란 슬리퍼를 사서 신고 다녔다.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다. 수치상으로 아직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한의원에 가니 심장에 화기가 가득해 이미 신장이 많이 다친 것 같다고 했다.
어느 병원에서도 딱히 나를 치료해내지 못했다. 그렇게 의사들을 찾아 병원들을 돌다가 스위스 대체 요법으로 진료하시는 분을 소개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