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신경영 선언하는 이건희 회장
(서울=연합뉴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만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트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2020.10.25 [삼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지난 반세기 삼성을 일으키고 키워오셨던 창업주를 졸지에 여의고…"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 1일 제2대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에서 삼성에 가장 먼저 입사한 최관식 삼성중공업 사장한테서 그룹의 사기(社旗)를 건네받아 흔든다.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90년대까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1991년 둘째형 창희 씨가 사망하고 이듬해 삼성가(家)의 분할은 거의 마무리됐다. 삼성가 가족회의에서 제일제당과 안국화재는 큰형 맹희 씨 집안으로, 제일합섬은 둘째형 집안인 새한미디어로 정리가 됐다. 동방생명(삼성생명)은 승계자 이 회장의 몫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이후 그룹의 변신을 꾀하던 그는 그러나 1993년까지는 이렇다 할 조처를 내놓지 않는다. 1991년에 나온 해외지역전문가 파견제도. 이른바 독신자파견제로 불리던 이 제도 정도가 회장 이건희의 작품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에도 강진구 삼성전자 회장을 대리 참석시키고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세인들은 이건희 회장을 '은둔의 황제'라고 불렀다. 하지만 '업(業)의 특성'을 꿰뚫어본 이 회장의 직관은 대단했다. 1990년대 초 신세계 사장에게 '백화점 산업은 무엇이냐'고 물어본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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