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세기를 넘나들며 가장 극적인 성공 신화를 쓴 최고경영자(CEO), 최단시간에 20종의 글로벌 1위 제품을 만들어낸 기업인, 잠자던 한국 경제를 깨운 신경영인, 사람이 전부라 외치던 인재양성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인내와 처세술을 실천한 전략가…
하지만, 철저한 외톨이였고 혼자됨을 즐겼던 은둔의 황제, 무노조 경영을 철칙으로 삼았던 자본가, 창업주의 그림자를 벗어나려 평생 무던히도 애쓰던 영원한 승계자, 풍부한 감성으로 영화감독을 꿈꾸던 이국의 소년…
이런 수식만으로는 삼성그룹 총수 이건희를 이해할 수 없다. 거대 '삼성왕국'을 건설하고 27년간 이끌어온 그의 리더십을 설명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1987년 극적인 2세 승계를 시작으로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라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을 거쳐, 초유의 구조조정으로 외환위기를 정면 돌파하고 밀레니엄 시대에 삼성을 글로벌 IT(정보기술) 전쟁의 최강자로 키워낸 고도의 통찰력과 설계능력, 혁신의 동력이 그의 삶 곳곳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삼성 이건희 회장 모습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개와 영화에 집착했던 외톨이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호암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이다.
어린 건희는 경남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다. 1945년 해방되고 어머니와 형제를 만날 수 있었다.
형으로는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 씨와 고인이 된 창희 씨, 누나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 씨가 있다. 신세계그룹 회장인 명희 씨가 유일한 동생(여동생)이다.
사업가인 호암을 따라다니며 유소년기를 보냈다. 유년기를 대구에서 보내다 사업확장에 나선 아버지의 손에 이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