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속 여인은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박쥐처럼 음침한 악령이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올라 앉아 있습니다. 우리 옛말 가위가 '잠든 사람을 짓누르는 귀신'을 뜻하듯, 여인은 가위에 눌려 있습니다. 깨고 싶어도 깨지 못한 채 꿈에 갇혀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영국 미술계를 뒤흔들었던 작품 '악몽'입니다. 스위스 화가 푸젤리가 그렸지요.
그리고 영국 시인 셸리의 아내 메리가 이 그림에 영향을 받아 쓴 소설이 '프랑켄슈타인' 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꾸었던 인조인간의 악몽을 소설 서문에 썼습니다.
"눈을 뜬다. 그 무시무시한 것이 침대 곁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그렇듯 우리는 지금, 가위눌림이 일상이 돼버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악몽에서 깨어날 만하면 또 악몽이 오고 또 오는 가위눌림의 연속입니다.
작년 말 국제 육상대회 장면도 보시지요. 선두 주자가 결승선 코앞에서 두 팔을 펼쳐 들어 우승 세리머니를 합니다. 그 순간, 바로 뒤에서 치고 나온 선수에게 우승을 빼앗깁니다. 이렇듯 모든 경기는 끝나야 끝나는 겁니다.
잠시 후 자정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격상됩니다. 1.5단계로 올린 지 불과 닷새 만입니다. 하지만 뒤늦은 감이 있습니다. 상황이 지난 2~3월 대구 경북, 8월 수도권 유행보다 훨씬 심각한데다, 더욱 위험한 계절, 겨울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감염학회는 긴급성명을 냈습니다. "이번 겨울은 백신 없이 버텨내야 하고, 곧 의료자원의 한계가 올 것" 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방역 당국 스스로도 다음달 초엔 하루 6백명 넘는 확진자가 나올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달, 거리 두기 완화 요건이 안 되는데도 섣불리 1단계로 낮췄습니다. 숙박-관광-공연 할인쿠폰 천6백만명분을 뿌려 이동과 여행을 사실상 권장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신호를 주고도 국민이 긴장을 늦추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보수 집회와 민노총 집회에 갖다 댄 이중 잣대도 방역 신뢰를 떨어뜨렸습니다.
이제 대가는 국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