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임계장'을 기억하시는지요? 지난해 아파트 경비원의 비극적 죽음을 계기로 세상에 알려진 줄임말이 '임계장' 입니다.
공기업에서 38년을 일한 정년 퇴직자가 자신의 임시 계약직 체험기에 붙였던 이름이지요. 그는 아파트 경비원, 빌딩 청소원, 주차관리원, 배차원을 전전했습니다. 미세먼지 마스크와 방한복을 주십사 했다가 이런 조롱과 타박을 들었습니다.
"다 늙은 경비가 얼마나 오래 살려고…" "노인도 추위를 탑니까"
'고다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는 앞말만 따서 만든 단어지요. 요즘 노인 근로자를 그렇게 부른답니다.
그는 종갓집 맏며느리였습니다. 어린이집을 운영했고 20년 동안 호스피스로 봉사했습니다. 평생 품은 문학의 꿈을 이루려고 문예창작과도 나왔습니다. 미술-문학-음악 상담 치료 1급 자격증도 여럿 있었습니다.
예순두 살 이순자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경력과 자격이 헛일이었습니다. 시청 구직창구 직원이 권하는 대로 이력서를 중졸까지만 쓰고 다 지웠습니다. 그때부터 꼬박 3년 '취업 분투' 아닌, 눈물겨운 '분루'가 시작됐습니다.
수건 접기, 백화점과 공사장 청소를 하다 몸이 망가져 어린이집 주방 일을 얻었습니다. 그런대로 할만했지만 원장이 다 삭은 쌀로 아이들 밥을 지으라고 하자 그만뒀습니다.
입주해 아기를 돌볼 때는 "박카스 파는 할머니가 되느니 우리 집 일이 낫다"는 폭언을 듣고 뛰쳐나왔습니다. 써뒀던 시신-장기 기증 증서와 함께 글 한 줄을 식탁에 올려놓았습니다.
"먼지로도 남고 싶지 않다"
다행히 극단적 시도는 실패했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뒤로 노인과 장애인, 환자 돌보미로 일했습니다. 와중에 늙은 말기 환자로부터 추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기초 수급자가 됐습니다. 덕분에 "원룸에서 다리미판에 노트북 펼쳐놓고 글을 쓰는 기쁨에 설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쓴 '실버 취준생 분투기'로 지난 여름 신문사 시니어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글은 이렇게 끝납니다.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한 달 뒤 그는 지병으로 숨졌습니다. 그가 외롭고 고단하게 지나온 길에 깊이 공감하며 수상을 축하하는 글 위로, 명복을 비는 글들이 지금도 쌓이고 있습니다. 그는, 삶의 끝자락에서 맞닥뜨린 현실이 아무리 가혹해도 그 앞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한 인간으로서 자존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끝내 문학의 꿈을 이루고 떠났습니다.
11월 26일 앵커의 시선은 '실버 취준생 분투기' 였습니다.
신동욱 기자(tjmic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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