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물을 퍼내는 장인수 씨
[촬영 홍규빈]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홍규빈 박규리 이승연 기자 = 잠시 비가 소강상태를 보인 10일, 가장 큰 피해를 본 강남과 관악 일대는 여전히 수해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관악구 일대는 복구 자원 부족으로 인해 강남보다 훨씬 수습이 더딘 상황이라 주민 불편이 컸다.
또 11일 다시 비가 예고된 가운데 침수 피해를 본 상가와 전통시장의 상인들은 수습이 되기도 전 손도 못 쓸 정도의 손실이 닥칠까 우려하고 있다.
◇ 난민촌 방불케 한 신림동…"정부 지원 시급"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가족이 손쓸 겨를조차 없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관악구 신림동에서는 주민들이 집안까지 들어온 빗물을 연신 퍼내며 살림살이를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애를 썼다.
아스팔트 도로 위는 진흙탕 범벅이었고 대로변 상가들은 전면 유리창이 깨져 테이프로 임시로 봉합해놓은 곳도 있었다. 주택가 골목에는 침수로 못 쓰게 돼 길가에 내놓은 집기류가 성인 남성 키보다 높게 쌓여 있었다.
집안에서는 주민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빼내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따금 구청 측에서 길거리에 나와 있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주민들은 구청의 지원이 부족하다며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 침수 피해 현장
[촬영 홍규빈]
건물주의 요청을 받아 배수 작업 중인 김인만(61) 씨는 "완전히 난민촌"이라며 "장비도 부족하고 다른 급한 집은 소방서에서 출동하긴 하는데 펌프 같은 것도 제대로 안 된 곳이 많다. 구청에서 지급한 것도 있겠지만 태부족"이라고 말했다.
인근에서 복구 작업 중이던 정영두(73) 씨도 "구청이나 정부 지원 얘기가 아직 없다. 가구마다 피해 액수를 살펴보고 적절한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 산더미 같은 쓰레기도 방역 차원에서 빨리 치워줘야 한다"고 했다.
가죽 도소매업을 하며 이 지역 건물 지하 창고에 가죽을 넣어놨다가 큰 손실을 본 나명자(58)씨는 구청 직원에게 항의 중이었다.
나씨는 "이런 상황이면 실사라도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 아무리 천재지변이라도 그렇지"라면서 "구청에 문의하니 대민봉사 나온 군인들에게 말하라는데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관악구청 측은 "빌라촌과 주택가가 많아 대로변과 비교해 복구 속도가 다소 더딜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군 병력과 구청 직원을 투입해 복구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주민 복구 및 행정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실종자 발생한 서초구 빌딩 앞 현장지휘소
[촬영 이승연]
◇ 피해 컸던 강남은 도로 등 수습…일부 주민·상인 불편 여전
복구에 어려움을 겪는 관악구 피해 지역과 비교하면 강남 일대 도로와 인도는 통행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비교적 빠르게 흙과 쓰레기들이 치워졌다.
실종자가 한 명 발생한 서초구 빌딩 앞에 쌓여있던 흙과 나뭇잎들도 모두 정리된 상태였다. 구청과 소방 관계자가 빌딩 앞과 뒤에 호스를 대고 후반 배수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실종자를 찾기 위한 현장지휘실도 가동 중이었다.
학원가 피해가 있었던 대치역 인근도 차량 통행이 원활했다. 폭우 직후 버려진 차량 수십 대도 대부분 견인됐거나 갓길로 빼놓았다.
큰 피해가 난 진흥아파트 앞 상가도 지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물을 빼고 토사도 제거했다. 한국전력에서도 나와 전력 복구 작업을 서두르고 있으며 이르면 11일에는 마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아파트는 이틀째 단수·정전 상태라 주민들은 인근 숙박시설로 피신했다. 단지 앞에는 보험사 이동보상서비스센터가 설치됐다.
15년째 진흥아파트에 산다는 김미라(75) 씨는 "10년 전에도 이랬는데 믿고 살라 해서 살았더니 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더는 못 살겠어 집을 내놓았다"고 했다.
강남구청 측은 "정비 대상 도로 83곳 중 15건은 완료했고 63건은 임시조치해 5건만 진행 중이다. 침수차는 111대 견인해 통행에 큰 불편함이 없다"며 "구룡마을과 달터마을 이재민을 수용할 구호소를 운영 중이며, 오늘 군부대 40여 명도 투입한다"고 설명했다.
서초구청 관계자도 "침수 피해 차량 조치 등은 대부분 다 했고 도로 정비와 가구 지원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침수로 영업을 중단한 신림동 상가 상점들
[촬영 홍규빈]
◇ "내일 또 비 오면 어떡하죠" 전통시장·상가 상인들 한숨
수마가 할퀴고 간 곳은 주택가뿐만이 아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추석을 앞두고 닥친 재해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신림동에 있는 관악신사시장에서는 골목 어귀부터 풍기는 악취가 당시 침수 상황을 짐작케 했다. 평소라면 과일과 채소 등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매대는 텅 비어있었다.
시장 상인들은 십시일반 힘을 모아 폭우가 휩쓸고 간 흔적을 치우고, 피해 규모가 큰 가게에 모여 일손을 돕고 서로를 위로했다.
인근 관악구 반지하에 거주한다는 반찬가게 주인 김명옥(66) 씨는 이번 수해로 집도 가게도 큰 손해를 입었다.
김씨는 "추석 준비하느라 미리 준비해놨던 소고기도 다 쉬어버리고 김치, 젓갈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다 상했다"며 "집도 침수돼 잠자리마저 없는데 어제 동사무소에 가니 자리가 이제 없다고 하더라"면서 눈물을 보였다.
텅빈 관악신사시장 매대
[촬영 홍규빈]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권혁병(54) 씨는 "매대에 있던 과일들이 다 떠내려가고 기름통도 엎어져 쓸 수가 없게 돼 거의 500만원 정도 피해를 봤다"며 한숨을 쉬었다.
농산물 가게를 하는 김모(63) 씨도 잡곡과 쌀이 젖어 모두 버려야 했다. 김씨는 "1년 팔 곡물을 저장해놓는데 냉장고 안까지 물이 들어차 전부 다 버려야했다"며 "눈앞이 캄캄하고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34년간 이 시장에서 속옷가게를 운영하는 이현숙(61) 씨는 당시 상황을 '아비규환'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씨는 "가격으로 환산하면 4천만원이 넘는 속옷이 전부 젖었다"며 "34년을 장사했는데 이번이 최악이다.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전통시장이 아닌 일반 상가도 피해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신림동 대로변은 침수 피해로 휴업한 상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편의점 앞 내놓은 물에 젖은 상품들
[촬영 이승연]
성인 남성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던 대치역 인근 상가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고건호(68) 씨는 가게 앞에 빗물에 젖어 팔지 못하게 된 상품을 한가득 쌓아놓고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고씨의 가게가 입점한 건물은 지난 8일 침수 피해 이후 이틀째 단수, 정전 상태다.
고씨는 "이런 상황에서 영업이 되겠느냐. 망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치역 인근 상가 지하에서 스터디카페를 운영하는 구형호(44) 씨도 막막함을 토로했다.
구씨는 "2020년에 물난리가 한 번 나서 장판을 새로 갈았는데 이번에 또 이렇게 됐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답도 없다"면서 "또 비가 온다고 하는데 정말 막막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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