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대통령을 규탄하며 파리 시내를 행진하는 프랑스 대학생들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연금 개혁을 규탄하는 대학생들이 21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 외곽 이브리쉬르센 소각장을 출발해 오스테리츠역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3.3.22 runran@yna.co.kr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마크롱, 마크롱, 당신이 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
21일(현지시간) 오후 2시 30분 프랑스 파리 외곽 이브리쉬르센 소각장 인근 광장에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학생 노동조합 연합체인 랄테르나티브(l'Alternative)가 하원 표결을 건너뛰어 가며 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규탄하기 위해 조직한 행사였다.
처음에는 수십명에 지나지 않던 인파는 13구 톨비악 대학가를 거쳐 오스테리츠 역까지 약 5㎞ 거리를 2시간 넘게 행진하는 사이 수천 명으로 늘어나 장사진을 이뤘다.
"60세까지 일하는 것도 이미 너무 지나치다"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와중에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응한 젊은이들은 한목소리로 마크롱 대통령의 헌법 제49조3항 사용을 비난했다.
정년을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늘린다는 내용부터 불만인데, 이를 처리하는 과정조차 민주적이지 못 했다는 점에서 이번 개혁은 문제가 많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었다.
대학생 행진을 조직한 엘레노르 슈미트 랄테르나티브 대변인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프랑스 파리에서 21일(현지시간)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규탄하는 시위를 조직한 랄테르나티브 대변인 엘레노르 슈미트(22) 씨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2023.3.22 runran@yna.co.kr
엘레노르 슈미트(22) 랄테르나티브 대변인은 마크롱 대통령이 하원 표결을 생략하기로 하면서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국민들과 전쟁을 선포한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시앙스포 스트라스부르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슈미트 대변인은 헌법에 담긴 조항일지라도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결정을 하원 동의도 받지 않고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연금 개혁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힘이 없는 사람들이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까지 대표하라고 존재하는 게 하원이다. 그런 하원을 외면하는 정부를 민주적이라고 볼 수 없다."
랄테르나티브가 조직한 이날 행사에는 비단 대학생뿐만 아니라 이제 막 노동 시장에 진입했거나, 아직 직업을 찾고 있거나, 한창 일을 하고 있어야 할 20∼30대도 함께했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위고(23) 씨는 마크롱 대통령이 헌법 49조3항을 이용한 것은 "두 귀를 완전히 막아버렸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위고 씨는 마크롱 대통령이 첫 번째 임기 때인 2018년 말 노란 조끼 시위를 겪으면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듯하다며 이번에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정년 연장은 부모님, 조부모 그리고 먼 훗날의 나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고, 사회의 미래 비전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라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회사에 휴가 내고 마크롱 대통령 규탄 시위에 참여한 직장인들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게임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나탕(24·가운데)씨와 프로그래머 가에탕(30·왼쪽) 씨가 대학생 노동조합 연합체인 랄테르나티브가 조직한 시위에 참여해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사진에 찍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023.3.22 runarn@yna.co.kr
게임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2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나탕(24) 씨와 프로그래머 가에탕(30) 씨는 어떤 식으로든 목소리를 내고 싶어 이날 행진에 함께하게 됐다고 전했다.
나탕 씨는 연금 개혁 법안을 공개한 지난 1월부터 드문드문 시위에 참여해왔으나, 마크롱 대통령의 '하원 패싱'을 계기로 어지간하면 모든 시위에 나오려 한다고 말했다.
가에탕 씨는 마크롱 대통령이 민심에 귀를 기울일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대학생들까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난 2개월 동안 프랑스 주요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시위에서 존재감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대학생들이 점점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헌법 제49조 3항에 따라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때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안을 총리의 책임 아래 의회 표결 없이 통과시킬 수 있다.
정부가 이를 사용하자 일부 야당이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지만 지난 20일 부결됐고, 그와 동시에 표결하지 않은 연금 개혁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중도·좌파 연합이 발의한 불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과반에 겨우 9표가 모자랐다는 점은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이들을 더욱 화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됐다.
마크롱 대통령의 행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이달 23일 프랑스 주요 노동조합이 주최하는 제9차 전국 단위 시위를 앞두고 산발적으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대학생들이 주최한 행진이 오스테리츠 역에서 끝나고 나서는 강 건너 반대편에 있는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또 다른 시위가 열려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마크롱 대통령을 규탄하는 행진을 마친 대학생들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프랑스 대학생 노동조합 연합체인 랄테르나티브가 21일(현지시간) 오후 오스테리츠 역 앞에서 행진을 마치고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2023.3.22 runran@yna.co.kr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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