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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대통령 편지 반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20년 10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살해된 이모씨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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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지도자를 상징하는 봉황 문장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서해 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살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의 아들이 반납한 문재인 대통령의 편지 이야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20년 10월 열아홉 살이던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한다”고 했다.
이씨의 아들은 지난 18일 “대통령님의 편지는 주적인 북한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고등학생을 상대로 한 거짓말일 뿐이었다”며 이를 돌려보냈다. 경찰에 막힌 유족들은 이를 청와대에 직접 전달할 수조차 없어 편지를 청와대 앞길 위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2020년 9월 북한군에 의해 살해된 이모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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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의 분노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다만 기자(記者)는 말 그대로 기록하고, 또 기억하는 사람이다. 유족의 분노가 어디서 나왔는지 그새 잊어버린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래서 기록을 남긴다. 이씨의 아들이 문 대통령의 편지를 “거짓말”로 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2020년 9월 당시 상황을 시간대별로 정리해보는 것만으로도 세 가지의 의문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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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생존 6시간, 정부 뭘 했나
이씨의 실종이 파악된 건 9월 21일 오전 11시30분, 북한 단속정이 이씨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군이 알게 된 건 이튿날인 9월 22일 오후 3시30분이다. 약 3시간 뒤인 저녁 6시36분 이런 사실이 문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보고된다.
그리고 다시 약 3시간 뒤인 밤 9시40분 북한군 총기가 불을 뿜었다. 밤 10시30분에는 시신을 불태워 훼손했다는 첩보까지 청와대에 보고가 됐다.
의문점 하나.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한민국의 국민이 적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북한군이 이씨에게 총기를 발사하기까지 여섯 시간 동안 정부는 뭘 했나. 처음 서면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의 판단은 무엇이었나.
북한군 피격으로 서해상에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의 부인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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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첩보 입수 2시간 반 뒤인 9월 23일 새벽 1시~2시30분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은 뒤인 오전 8시30분 문 대통령에게 이를 대면 보고했다.
의문점 둘. 청와대가 이씨가 살해된 사실을 인지한 뒤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기까지 10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청와대는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었다지만, 다른 사안도 아니고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살해된 뒤 시신이 훼손됐을 가능성이었다. 100% 확인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1%의 확률만 있어도 대통령은 알아야 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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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연설 수정, 왜 고려도 안했나
청와대에서 긴급 관계장관회의가진행 중이던 9월 23일 새벽 1시26분~1시42분 문 대통령은 유엔 화상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위해 유엔과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달라”고 했다. 졸지에 자국민이 북한군이 쏜 총에 희생되는 와중에 유엔에서 대북 관여와 종전선언을 열심히 외친 지도자가 됐다.
의문점 셋. 청와대는 왜 문 대통령의 연설 내용 수정이나 순서 변경을 고려하지 않았는가.
사전 녹화라고는 해도 연설 순서를 바꿔 시간을 버는 걸 고려할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보의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 연설을 수정한다는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2020년 9월 25일 북한이 전해온 통지문과 남북 정상이 주고받은 친서 내용을 발표하는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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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문 대통령뿐이니까. 하지만 대통령은 취침 중이었다.
이는 청와대 참모들이 애초에 우리 국민이 북한의 만행에 희생됐을 ‘가능성’ 정도로는 유엔 연설을 손댈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정부의 국민 보호 의무와 직결될 수 있는 근본적 인식의 문제다.
이씨의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은 이런 세 가지 의문점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이씨가 북측 수역에서 생존해있는 동안 정부가 이씨를 살리기 위해 무슨 조치를 했는지, 이후에는 피살과 관련한 대응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법원 역시 이를 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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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도 허가한 정보공개 묶은 靑
하지만 청와대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올 5월 문 대통령이 퇴임하면 해당 기록들은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비공개 대통령 기록물은 최장 30년까지 묶어둘 수 있다. 법원의 판결과 상관없이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까지가 이씨의 아들이 문 대통령의 약속을 “거짓말”로 부르게 된 이유다. “무엇이 두려워 법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냐”고 묻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록으로 꼭 남겨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사건 발생 직후만 해도 “반인륜적 행위”라며 길길이 뛰더니(2020년 9월 24일 청와대 입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과 한마디에 확 달라진 정부 태도다.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에 숨진 이모씨의 유족과 법률대리인이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편지를 반환하기 위해 청와대로 가던 중 경찰에 막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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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9월 25일 통지문을 보내왔다. 이씨가 수상한 행동을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장황한 설명, 이는 중앙이 아닌 ‘단속정장의 결심’이었다는 면피성 해명 뒤에 “국무위원장 김정은 동지는…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사과가 있었다.
“대단히 미안하다”는 한 마디에 모든 게 달라졌다. 9월 27일 오후 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 뒤 청와대는 “북측의 신속한 사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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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사과 한마디에 ‘피살’→‘사망’
“반인륜적 행위를 규탄한다”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로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사흘 2시간 10분이었다. 동시에 북한을 향한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규탄도 “공동조사를 요청한다”는 부탁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 ‘피살’은 ‘사망’으로 둔갑했다. 청와대는 9월 24일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했다”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사과 뒤인 9월 29일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 결과물 발표에서는 “서해 상에서 ‘사망’한 우리 국민”이라고 표현을 바꿨다.
총에 맞아 숨진 뒤 시신은 불태워졌는데, 북한조차 통지문에서 ‘사살’이라고 썼는데, 우리 정부는 그냥 ‘사망’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도 일관되게 쓰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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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의 기록은 여기까지다. 끝이 아니다. 정부가 이씨를 월북자로 만든 과정, 정상끼리 친서를 주고받고 통신선을 다시 열면서도 국민의 희생은 따지지 않는 까닭…. 쌓아갈 기록은 아직 많다. 기록해야 제대로 기억할 수 있다.
중동 순방 중이던 문 대통령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씨의 아들은 “제 분노를 기억하라”고 했다.
기억한다.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기만하려는 사람은 절대 기억하려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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