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위 머리카락 뿌리며 분노…이란 反히잡 시위 더 세졌다 [세계한잔]

2022.10.02 방영 조회수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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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사전 > 세계한잔 ※[세계한잔]은 우리 삶과 맞닿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진하게 우려내 한잔에 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BBC 소속 언론인 샤안 사다리자데가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촉발된 이란의 반히잡·반정부 시위라며 지난 19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영상. 여성들이 시위대의 선두에 서 행진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비통에 잠긴 여성들이 무덤 위에 꽃을 뿌린다. 한 여성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무덤 위에 놓으며 울부짖는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부터 소셜미디어에 확산 중인 이 영상은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CNN 등 외신은 이 영상에 대해 "한 여성이 이란의 반히잡·반정부 시위 도중 강경 진압으로 사망한 오빠의 장례식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며 슬픔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이슬람 세계의 여성 머리 스카프)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단 이유로 도덕 경찰(이란 여성의 복장 단속 공권력)에 끌려가 의문사한 뒤 촉발된 시위는 이란 80개 도시로 번졌다. 히잡 강제 착용의 대상인 여성들이 선봉에 서자 남성들도 연대하며 반정부 시위로 확산했다. 9월 17일부터 열흘 넘게 이어진 시위에서 83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체포됐다고 이란의 인권 단체가 29일 밝혔다. ━ 이란 시위, 과거와 이렇게 다르다 BBC·뉴욕타임스(NYT) 등 외신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란의 이번 시위는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과거 시위들과 차이가 있다. 우선 이번 반정부 시위는 이란의 여성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 이란에선 2009·2017·2019년 등에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으나 주로 남성들이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번 시위에서 이란의 여성들은 히잡을 찢어 불태우거나 머리카락을 자르며 시위대의 선두에 섰다. NYT는 "그간 이란 여성들이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중심에 선 적은 없었다"고 평했다. 1979년 3월 직장에서의 히잡 의무 착용 명령에 항의 시위를 벌이는 이란 여성들. BBC 홈페이지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은 "우리에겐 (시위) 지도자가 없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지도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누구도 나를 조종할 수 없고, 머리카락으로 나를 정의할 수 없다"고 했다. 이란 여성들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모습은 이번 시위의 상징이 됐다. CNN은 여성이 애도나 저항의 표시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는 1000년 전 집필된 페르시아어 장편서사시 『샤나메』에서도 등장한다며 이란 여성들은 분노와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히잡 강제 착용이 시작된 1979년 당시에도 이란 여성들의 대규모 반히잡 시위는 있었다. 이슬람 혁명을 주도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1979년 3월 7일 모든 여성이 직장에서 히잡을 의무 착용하도록 명령하자, 다음 날 여성 10만 명이 수도 테헤란 거리로 나와 항의했다. 이슬람 혁명 이전 팔레비 왕조 치하에선 서방처럼 자유로운 복장에 익숙했던 이란 여성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히잡 미착용 단속이 이뤄지기 전이었던 당시 시위가 여성 복장과 인권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시위는 독재 정권 타도를 외치는 반정부 시위로까지 확산했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중앙일보에 "이번 시위는 여성의 자유로운 복장과 인권, 생명은 물론 인간의 보편적인 자유를 갈망하는 시위이자 누적된 생활고와 정치적 탄압에 대한 불만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시위"라고 설명했다. 한 이란 여성이 히잡을 불태워 하늘을 향해 들자 남성을 포함한 이란 시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언론인 샤안 사다리자데 트위터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남성·각계각층 동참 이유는 또 다른 특징은 여성에 대한 히잡 강제 착용으로 촉발된 시위에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한다는 점이다. 이란 중부 이스파한에서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은 BBC에 "(시위 도중) 하늘을 향해 히잡을 흔드는 동안 남성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보호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연대를 확인해 기쁘다"고 말했다. 이란 시위 영상 속엔 여성들과 함께 행진하고, 히잡을 불태우는 여성에게 박수를 보내는 남성들도 보인다. 언론인 샤안 사다리자데가 이란인들이 반히잡·반정부 시위 도중 진압 경찰에 맞서 인간 사슬을 형성한 사진이라며 지난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 트위터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구기연 교수는 "이란인들은 히잡 착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착용을 강제하는 데 항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란에서 히잡 문제는 젠더 갈등이 아닌, 진영 간 대립"이라며 "성별과 무관하게 개혁주의 성향의 이란인들은 히잡 강제에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이희수 한양대 명예교수도 "이란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은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강요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번 시위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세계의 변화상을 접한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갈수록 더 많은 이란인들이 히잡 강제 착용에 반대하는 것은 여론 조사 결과로도 나타난다고 전했다. 각계각층의 참여도 이번 시위의 특징으로 꼽힌다. NYT는 "이란 건국 이후 처음으로 테헤란 북부의 고층 아파트에 사는 부유층과 남부 노동자 계급의 시장 상인들, 쿠르드족과 투르크족 등이 결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시위대의 다양성은 경기 침체와 사회 부패,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규제 등에 걸친 불만의 폭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히잡을 쓴 이란 여성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히잡 단속에 감시카메라까지 이슬람 57개 국가 중 현재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나라는 이란·사우디아라비아·아프가니스탄 3개 국가에 불과하다. 이란은 1979년 일터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한 데 이어 1981년부턴 현재와 같이 여성에게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착용하고, 헐렁한 옷으로 온몸을 가리도록 했다. 여성들이 머리카락이 드러나게 히잡을 쓰는 식으로 저항하자, 이란 의회는 1983년 히잡 미착용 여성이 채찍 74대를 맞는 처벌을 도입했고, 이후 최대 2개월의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추가했다. 지난 21일 이란 테헤란에서 반히잡·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성의 복장 단속은 기존 법 집행기관이 비공식적으로 벌여왔으나, 강경 보수 성향의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전 이란 대통령의 취임 직후인 2005년 이란 여성의 복장 단속을 담당하는 도덕 경찰이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도덕 경찰이 탄 흰색과 녹색이 칠해진 밴 차량은 이란 여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WSJ에 따르면 도덕 경찰은 주로 테헤란 지하철역 주변 등 붐비는 장소에서 단속을 실시해 체포된 여성들을 밴에 태워 구치소로 데려간다. BBC는 여성들의 증언을 토대로 체포와 구금 과정에서 종종 도덕 경찰의 구타와 위협이 가해진다고 전했다. 여기에 강경 보수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지난 8월 공공장소에서 감시카메라로 히잡 미착용 여성들을 단속해 벌금을 부과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해 이란 여성들의 분노를 키웠다. 지난 28일 독일 베를린에서 이란의 반히잡·반정부 시위와의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란 정권이 히잡 단속에 몰두하는 사이, 대이란 제재와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이란의 경제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3월 이란 통계청에 따르면 이란의 연간 물가 상승률은 50%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가격이 치솟아 지난 5월 이란 정부가 수입 밀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면서 밀가루 기반 식품 가격이 최대 300% 급등하기도 했다. 이란 국민들이 제재 해제의 돌파구로 기대하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협상도 서방과의 이견 속에 교착 상태다. ━ "물러서지 않겠다"...이란 사회 달라질까 이런 상황 속에서 벌어진 이번 시위에선 '물러서지 않겠다'는 이란인들의 각오가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위기그룹의 이란 국장 알리 바에즈는 NYT에 "(이란의)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잃을 게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이란 반히잡·반정부 시위와의 연대 시위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이번 이란 시위에선 여성이 저항과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가 시위의 상징이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란 정부는 시위 진압을 위해 인터넷을 차단했지만, 젊은이들은 가상사설망(VPN) 등을 통한 우회 접속으로 시위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국제사회도 지지를 보내고 있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스위스·호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캐나다는 이란의 도덕 경찰 등을 제재한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도 시위 열기와 국제사회의 연대에 부담감을 느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시위를 계기로 이란 사회에 변화의 기미도 감지되고 있다. 시위 이후 며칠째 도덕 경찰의 차량이 테헤란 거리에서 사라졌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28일 전했다. 매체는 이란 여성 탄압의 상징과도 같은 이 차량은 심지어 도덕 경찰 센터 밖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개혁주의 분석가 사예드 레일라즈는 "아마도 도덕 경찰은 거리에서 철수할 것"이라며 "이란은 실제로 히잡 관련 정책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고, 도시 중산층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사회적 자유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FT는 이란이 히잡 의무화를 폐지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구기연 교수는 "이번 시위의 불씨가 쉽게 꺼지지 않을 것 같다"며 "이란 사회를 변화시키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선영·김홍범 기자 youngcan@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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