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에 맺힌 ‘진주알’…나비가 꽃처럼 뒤죽박죽 태어나는 4월 여름

2024.04.19 방영 조회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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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두리풀에 낳은 애호랑나비 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남녘에서 이미 끝난 봄꽃 축제가 강원도 산속에서는 이제야 시작이다. 추운 겨울을 뚫고 가장 먼저 봄을 알려준다는 매화나무가 막 꽃을 피웠고 노란색 개나리, 붉은 물감 들인 진달래와 선홍빛 복숭아꽃과 벚꽃이 피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동요를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순서를 기다려 차례차례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파르게 오르는 기온에 따라 형형색색의 꽃이 앞다투어 한꺼번에 피었다. 며칠 보지도 못했는데 봄비에 꽃잎이 떨어져 흩날리니 서운하기도 하다. 남녘에서 이미 끝난 봄꽃 축제가 강원도 산속에서는 이제야 시작이다. 사진은 선홍빛 복숭아꽃.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팽나무 잎을 맛있게 먹고 있는 제주꼬마밤나방 애벌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19일)은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穀雨).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하는 날’이라는 의미에 맞게 엊그제 흠뻑 내린 비로 가뭄을 해결하고, 올해 농사를 시작했다. 이제 꽃 지고, 잎이 피기 시작했으니 봄날이 가고 본격적인 여름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바람과 햇빛과 풀과 나무 모든 것이 푸르러졌다. 지난 주말(13~14일) 기온이 폭염 수준인 32도를 넘기면서 때 이른 여름 날씨로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보도가 많았다.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 시기’에 때가 이르다거나 늦다는 표현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막연히 지구가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날씨를 넘어 극한의 추위와 더위가 불규칙하고 반복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다. 극심한 환경 변화로 생태계 내 견제와 균형이 깨져 더 따뜻하고 더 습해지면 ‘에코데믹’(eco-demic), 즉 환경 감염병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기후변화를 자연환경에만 미치는 영향으로 이해해왔지만, 에코데믹은 인간의 건강과 목숨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기온을 맞추지 못해 순서 없이 한꺼번에 핀 식물과 마찬가지로 곤충들도 차례 없이 발생하고 있다. 필자가 직접 실험을 통해 확인한 호랑나비 3종의 월동 번데기 발육임계온도(Low Temperature Threshold, 번데기가 월동에서 깨어나는 온도)는 애호랑나비 8.1℃, 호랑나비 10.5℃, 꼬리명주나비는 12.4℃였다. 산초나무에 낳은 호랑나비 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실험 결과를 보면, 애호랑나비가 나오고 다음에 호랑나비, 그다음에 꼬리명주나비가 번데기에서 나와 나비가 되어야 정상이지만, 몇 년 전부터 앞뒤 없이 어지러워졌다. 애벌레가 번데기 안에서 발육을 시작하고 날개돋이에 필요한 온도를 기다리는 동안 밖에서는 겨우내 굶주렸던 나비에게 꿀을 제공할 진달래와 복숭아꽃, 벚꽃이 피어난다. 애호랑나비, 호랑나비, 꼬리명주나비도 각각 족두리풀, 산초나무, 쥐방울덩굴 새싹에 알을 낳아야 하는데 뒤죽박죽이 되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곤충과 식물의 발생 시기가 달라지는 생태계 변화를 실제 체험하면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걱정한다. 언제 어디서든 인간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을 것이지만 그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질병을 일으키고 식량난을 유발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자연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을 기후변화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변온성 동물인 곤충의 돌발적 발생이 그 진행 상황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뿔나비 애벌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햇볕을 따라다니며 일을 했는데 이제는 그늘을 찾아다니며 일을 한다. 우람하게 성장한 팽나무가 제격인데 팽나무와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연구소에는 살지 않던 나무인데, 다양한 애벌레들이 즐겨 먹는 식물이라 27년 전 아내의 친구로부터 기증을 받아 심었다. 쇠꼬챙이같이 가느다란 묘목을 심었는데 토양이 좋아서인지 100년은 된 듯한 웅장한 모습으로 자라나 큰 숲을 이루고 있다. 많은 곤충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면서 인간에게도 큰 그늘을 주는 고마운 나무다. 겨우내 축사에서 지내던 소 ‘코프리스’와 ‘업쇠’를 방목지로 풀었다. 코프리스는 뿔소똥구리 속명을 따서 이름을 붙였고, 업쇠는 필자의 어머님이 좋은 업을 많이 지은 소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어주셨다. 이 소들은 멸종위기 곤총 소똥구리들에게 신선한 먹이원인 소똥을 공급해 주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방목지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던 녀석들인데, 풀이 마르는 늦가을부터는 축사에서 생활한다. 온도가 오르자 초원으로 달려가고 싶어 온종일 풀어달라고 아우성치던 녀석들을 봄비를 흠뻑 맞아 푸르러진 초원에 풀어놓으니 좋아서 펄쩍펄쩍 줄달음 친다. 말보다 더 빠르다. 소똥구리는 똥을 굴리거나 지하에 복잡한 둥지를 만들어 먹이인 똥을 저장하고 그 똥으로 경단을 만들고 경단 안에 알을 낳는 특별한 번식 행동으로 유명한 곤충이다. 행동이 특이하고 신기하여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생태적 역할은 더욱 크다. 인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동물의 배설물을 먹어치워 냄새 없고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파리의 애벌레를 잡아먹는 응애를 태우고 다니며 질병을 일으키는 매개 곤충을 없애줘 인간의 건강도 지켜 준다. 훌륭한 일밖에 하지 않는 경이롭고 훌륭한 곤충들이 멸종된다는 사실이 가슴 아파 소를 키운 지 18년. 멸종위기종 보전하려 소 키우다가 내가 먼저 멸종할 것이란 생각도 한다. 생명으로 충천한 이 골짜기에 다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었다. 호랑나비가 산초나무 잎마다 한 개씩 알을 낳았고, 애호랑나비도 족두리풀에 알을 낳았다. 손끝이 살짝만 닿아도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진주알같이 영롱하다. 생물들이 깨어나자 아내의 말수도 늘었다. ‘미안, 먹이가 떨어진 줄 몰랐어. 조금만 참아. 같은 날 나왔는데 너는 왜 이렇게 자라지 못했니. 좀 열심히 먹어.’ ‘햇볕이 너무 드는구나? 가리개로 가려줄게.’ 아내는 오랜 기간 멸종위기종을 극진히 살피면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속닥이는 버릇이 생겼다. 붉은점모시나비에게, 물장군에게 아내는 생명을 살리는 등불이 되고 있다.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를 돌보고 있는 아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생물들과 끊임없이 수다를 떨던 아내가 얼마 전 ‘홀로세생태연구소’를 찾은 대학 친구들과 2박 3일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노동이 생활의 일부라 익숙하지만, 아내가 최근 크게 아프며 ‘몸이 닳아 없어지는 것 같다’고 하소연할 때는 살짝 눈물이 났다. 곤충이 아닌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어색했지만, 보통은 이 모습이 더 일반적인 것이겠지. 할 수 없다. 멸종위기 곤충 연구와 보전에 발을 들인 이상 내 생활을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곤충의 생활에 맞춰 자신의 삶이 결정되는 것. “두고 가기 너무 가슴 아프다”라는 아내 친구의 마지막 말이 귀에 쟁쟁하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기획] 누구나 한번은 1인가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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