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머피 씨가 약을 입으로 먹지 않겠다면 다른 방법으로 투여해야겠네요."
정신병원 수간호사는 오만하게 군림합니다. 환자가 주인이어야 할 병원에 뻐꾸기처럼 둥지를 틀고 주인 행세를 합니다.
월드시리즈 TV 중계를 보고 싶은 환자들이 투표에 부쳐 과반이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막무가내입니다.
"TV를 켜줘요. 당장!"
아기 머리를 쓰다듬는 강아지, 의젓하게 썰매 타는 개...이런 걸 주객전도라고 하지요.
강아지 수염이 잘리기라도 한 걸까요. 민감한 신경이 집중된 수염이 없으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사람도 산이나 사막에서 간다고 가는데, 결국 한 지점을 맴돌곤 합니다. 이런 증상을 '링반데룽'(Ringwanderung), 환상방황(環狀彷徨) 이라고 하지요.
대통령이 민의의 심판에 따른 국정 쇄신 메시지를 낸다고 해서, 당연히 국민에게 밝히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리둥절합니다.
"국무위원 여러분, 국정의 최우선은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선거 후 첫 육성 메시지여서, 뼈를 깎는 반성과 진솔한 사과가 담겨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송구하다'는 한마디쯤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목소리는 당당했고, 내용은 신발 신고 발바닥 긁듯 미지근했습니다.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보다 많이 소통하고 경청하겠다"는 데 그쳤습니다.
정작 국민이 가장 듣고 싶어했을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습니다. 김건희 여사 문제 처리를 비롯해 민심을 결정적으로 돌려세운 논란과 의혹들 말입니다.
야당이 장악한 국회와 협력하는 자세도 국무위원들에게 촉구했습니다.
"국회와도 긴밀하게 더욱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국회에 잘 설명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늘 상징처럼 따라붙는 어록이 있습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그래도 당연히 성심껏 섬겨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민입니다.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국민한테는 이렇게 박절한 건가요. 지금 대통령이 직면한 상황을 생각하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도리어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4월 16일 앵커칼럼 오늘 '답답합니다' 였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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