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증거와 증언이 넘쳐나도 광주에는 '왜곡'이 잔인하게도 들러붙어 있습니다. 진실이 있는 한 모든 주장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순 없을 텐데 광주를 향한 왜곡의 목소리는 외려 시간이 갈수록 당당해지고 있습니다.
그 왜곡과 조롱, 모욕이 피해자들 삶에 어떠한 얼룩으로 남았는지 오픈마이크에서 담아왔습니다.
[기자]
이 사진은 엄마가 15살 아들을 땅에 묻는 날 찍혔습니다.
도청에 나가 보겠다더니 머리에 총을 맞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
그 아들에게 입혀 줄 깨끗한 수의마저 구할 수 없어 겨울 교복을 입히고, 비닐에 싼 한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김문희/고 김완봉 군 동생 : 그 냄새부터 시작해서 오빠 모습을 봤을 때 있을 수가 없어서 밖에 나와 다 토해 버렸거든요. 볼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무섭고 무서웠어요.]
사무치는 그 날이 기록된 이 사진에 33년 뒤 누군가는 택배 운송장을 합성했습니다.
총탄에 떠난 아들을 택배로, 아들을 잃은 엄마를 마치 택배를 기다린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김문희/고 김완봉 군 동생 : 너무 충격이었어요. 아마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쓰러지셨을 거예요. 아들을 잃고 통곡하고 있는 이 사진을 가지고,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간호사가 꿈이던 금희는 부상자를 살리기 위해 헌혈을 하러 갔다가 헌혈차 안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박금숙/고 박금희 양 언니 :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메리야스 벗어서 (피) 닦아 주고… (시신이) 부어가지고 관에 들어가질 않아. 관에 들어가질 않아서 억지로 이렇게 했어, 억지로…]
그날 엄마의 곁을 지켜준 이모를 누군가는 '북한군 광수'로 둔갑시켰습니다.
[박금숙/고 박금희 양 언니 : 도청에도 엄마랑 같이 다니다가 사진들이 찍혔나 봐요. 광수 몇 해서 사진 찍혀서. 언제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어. 그런 거 아니냐. 대꾸도 하기 싫어서 끊어 버렸어요.]
이곳 광주 법원에서 전두환 씨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헬기사격을 봤다고 증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