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역대 최악의 산불에 희생된 사람들 대부분이 고령층입니다. 이 때문에 고령층이 많은 농촌 지역에선 재난 문자 같은 대피 안내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밀착카메라 이상엽 기자가 피해가 가장 컸던 영덕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기자]
어두운 밤, 길바닥엔 무너진 집 잔해가 뒤엉켰습니다.
전깃줄도 여기저기 끊어졌습니다.
경북 영덕군의 한 마을 모습입니다.
저희 밀착카메라 취재진은 석리마을 안쪽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계속 잔불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경북 청송에서 영덕으로 산불이 번지던 지난 25일 밤 주민들은 이 마을에서 탈출했습니다.
대부분 70대 이상인 주민들에게 재난문자는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윤명자/경북 영덕군 석리 주민 : {재난문자 받으셨어요?} 뭔 재난문자요? {휴대폰 메시지로…} 그러니까 그거는 못 봤어요, 우리가. {재난문자 못 보셨어요?} 네. 재난문자 볼 시간도 없고. 휴대폰이 뭐 이거 다 불이 붙어서… 휴대폰이 안 됐어요. 오는 전화는 아예 받지도 못하고 우리도 걸지도 못하고.]
당시 주민들이 받은 재난 문자를 살펴봤습니다.
밤 11시 15분 산불이 영덕군 전 지역에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으니 산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설령 운 좋게 문자를 확인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피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는 게 주민들 반응입니다.
[전춘자/경북 영덕군 석리 주민 : 재난문자 자꾸 드르렁 드르렁 오는데 폰 글자를 모르니까. 어디로 가라고 하는지 그것도 없이 무조건 '빨리 대피하세요' 그랬지. 우리가 보니까 동네 불타는 게 보여. 눈에 보여. 훨훨훨훨 막 타는 게 보여. 빙 돌아서 불이 막 튀니까.]
주민들을 탈출시킨 건 마을 이장이었습니다.
[이상철/경북 영덕군 석리 주민 : 뉴스 들을 때는 불이 청송까지 왔다 이러더라고요. 제가 방송을 제대로 못 들어서 다시 이장한테 전화했거든요. 동네 이장의 재량으로 그렇게 대피한 거죠. {이장의 방송이 없었다면…} 전부 다 거의 반 이상은 돌아가셨다고.]
산불 영향 때문인지 자칫 마을 방송까지 먹통이 될 뻔했습니다.
[윤명자/경북 영덕군 석리 주민 : 처음에는 집 안에서 방송이 들렸어요. 그런데 두 번째 방송할 때는 불이 붙었는지 안에 방송이 안 되고, 밖에 방송만 됐어요.]
주민들은 정확한 대피 장소를 알 수 없어 일단 바다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불길에 고립되면서 가까스로 해경에 구조됐습니다.
[윤명자/경북 영덕군 석리 주민 : 길에도 불이지요. 마을에도 불이지요. 갈 수가 없어요. 이불 하나 들고 가방 메고 바닷가로 내려갔어요. 이쪽 작은 방파제 밑에 물가에서 네 사람이 이불 보따리 들고 숨어있고.]
몇 시간 뒤 다다른 해경 구조선, 그제야 반려견을 품에 안고 안도했습니다.
[윤명자/경북 영덕군 석리 주민 : 얘를 내가 데리고 탔거든요. 내가 끌어안고 있는데 멀미를 해서 막 토하려고…얘도 고생 많이 했어요.]
마을은 검은 폐허로 변했습니다.
바닷가 마을까지 깊숙이 들어와 보니까 남은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다 타버렸습니다.
주민들이 방파제로 향하는 '바다 가는 길'이라고 표시됐는데 이 길로 그대로 바다로 대피한 거예요.
오래 지켜온 삶의 터전도, 사랑하는 이웃도 잃었습니다.
[전춘자/경북 영덕군 석리 주민 : 마음은…그 생각하면 눈물 나지요. 금세 불 바람이 날아서 들이치니까 그 할머니를 구조하러 갈 수가 없었어요.]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하지 않고 대피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고령층 특성에 맞는 선제적 대피 명령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대피하라"
이 재난문자만으로는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대피할지 더 촘촘한 체계가 필요합니다.
[작가 강은혜 / VJ 김진형 / 영상편집 홍여울 / 취재지원 권현서]
이상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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