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죽었다
[뉴스데스크 (5월 19일)]
"SPC삼립 제빵 공장에서 오늘 새벽 50대 여성 직원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습니다."
[SBS 8뉴스 (5월 19일)]
"잇단 안전사고로 물의를 빚었던 SPC에서 또다시 사망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JTBC 뉴스룸 (5월 19일)]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SPC는 또 고개를 숙였습니다."
[뉴스데스크 (5월 19일)]
"뜨거운 빵을 식히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로 빵을 옮기는데, 직원은 이 벨트가 잘 돌아가도록 윤활유를 뿌리다가 기계에 몸이 끼어서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됩니다."
[던킨도너츠(SPC 계열사) 근로자]
"기계가 멈췄을 때나 뭐 공무 팀이 기계 세워놓고 들어가서 윤활제 뿌리거나 청소하거나 그런 거는 본 것 같은데, 생산 직원이? 윤활제를 뿌리고 있어요? 그런 적 없어요. 들어가기만 해도 안 되거든요. 제가 볼 때는."
[강규형/전 SPL(SPC 계열사) 노조 지회장]
"컨베이어 벨트 자체가 느리게 가고 (빵을) 식히는 거니까. 그렇게 다칠 때까지 보지도 못했다는 것도 만약에 다발성 골절이라면 한참 했다는 거 아니에요. 한참. 소리도 엄청 질렀을 거거든요."
■ 홀로 일하다 숨진 노동자‥책임은 누가?
◀ 이휘준 ▶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국내 제빵업계 1위 SPC 그룹에서 또 사망사고가 났습니다.
3년 동안 벌써 세 번째입니다.
임명찬 기자 나와 있습니다.
빵을 만드는 공장에서, 그것도 유독 SPC 그룹 공장에서 왜 노동자들이 계속 목숨을 잃고 있는 걸까요.
◀ 임명찬 ▶
이번 사고는 SPC삼립 공장에서 발생했습니다.
사망자는 새벽시간에 일하던 50대 여성 노동자였습니다.
사고가 왜, 어떻게 일어난 건지 추적했습니다.
◀ VCR ▶
불티나게 팔린 만화 캐릭터 '포켓몬' 빵과 한국야구위원회와 협업한 이른바 '크보빵'.
사고가 난 곳은 이 빵들을 생산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간 경기도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입니다.
사고에 대해 물어보려 하자 직원들은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SPC삼립 시화 공장 직원]
" 저희, 저희 큰일 나요. 그게 아니라 일개 사원들이 인터뷰할 권한이 없어요."
공장 안에 있는 3미터가 넘는 높이의 타원형 기계.
갓 구워진 뜨거운 빵을 포장하기 전 천천히 식히는 작업을 합니다.
[SPL(SPC 계열사) 공장 노동자]
"천천히 돌아가요. 왜냐하면 그게 완제품이 오븐에서 나온 게 뜨거운 거니까 그 식혀야 되니까 한 35분 걸려요."
지난 5월 19일 새벽 2시 54분에서 57분 사이.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56살 양 모 씨가 이 기계의 컨베이어 벨트에 끼인 채로 발견됐습니다.
스트레이트가 확보한 당시 119 신고 녹취록.
신고자가 "1번 라인에서 기계가 돌아가는데 사람이 끼었다"고 말하자 119 요원이 "어느 부위가 끼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신고자는 "몸체가 다 끼었다"고 말합니다.
이 신고가 접수된 때는 새벽 3시 1분 55초.
발견에서 신고까지 적게는 5분에서 많게는 8분가량이 소요됐습니다.
약 10분 뒤 119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양 씨는 두개골이 손상돼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양 씨는 기계 안쪽에서 벨트가 잘 돌아가도록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원래 사람이 직접 뿌리는 게 아니라 자동살포장비로 해야 하는 일인 데다, 양 씨의 업무도 아니라 기계 설비 정비 등을 담당하는 공무팀 업무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양 씨가 직접 기계 안쪽으로 들어간 겁니다.
더구나 2인 1조로 일해야 한다는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취재 결과 사고 당일 해당 라인에는 약 4명의 노동자가 근무 중이었지만 양 씨는 홀로 작업 중이었습니다.
사고가 난 기계 바로 옆에는 비상정지 장치가 있었습니다.
[이학영/국회 부의장(더불어민주당·환경노동위원회)]
"그 새벽에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에 시끄러움 속에서 혼자 하다 보니까 사고가 난 겁니다. 그래서 '2인 1조'를 철저히 지켰으면 그나마 안전장치를 눌러 세웠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일어난 사고여서 이건 예정된 사고였다."
이에 대해 SPC 측은 현장에 복수의 근로자가 근무했던 걸로 확인이 됐으며 정확한 사고 경위 파악을 위해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SPC그룹 산하 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22년 10월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근로자 박선빈 씨가 샌드위치 혼합기에 끼여 숨졌습니다.
그런데 SPC 측은 빈소에 빵을 보냈습니다.
[SPL(SPC 계열사) 평택 공장 사망사고 피해자 어머니 (2022년 10월 24일)]
"어떻게 그 사망자가 나온, 거기서 만든 빵을 장례식장에 갖다 놓냐고요. 그게 말이 되냐고. 아니요, 전혀 없었어요."
사고 다음 날 곧바로 생산 작업을 재개했다가 거센 불매운동에 부딪혔습니다.
그러자 사고 발생 6일 만에 허영인 회장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허영인/SPC그룹 회장 (2022년 10월 21일)]
"다시 한번 고인과 유가족께 깊은 애도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독립된 '안전경영위원회'를 만들고 산업 안전에 3년간 1천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대책도 발표했습니다.
[황재복/당시 SPC그룹 대표이사 (2022년 10월 21일)]
"안전시설 확충 및 설비 자동화 등을 위해 700억, 직원들의 작업 환경 개선 및 안전 문화 형성을 위해 200억을 투입하는 등 시설, 설비, 작업 환경의 안전성을 강화하겠습니다."
그런데 대책 발표 불과 이틀 뒤 경기도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 40대 노동자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10개월 뒤엔 같은 공장에서 50대 여성 근로자가 빵 반죽 기계에 끼여 숨졌습니다.
심지어 이번에 양 씨가 사망한 시흥 공장은 지난해 '안전경영위원회'가 '안전경영포상'을 한 공장이었습니다.
[김성희/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공정을 개선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그런 논의를 하기는 했는데 실질적으로 그것을 중요한 위험성의 요인들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 '작업 현장 자체가 실질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았다'라는 점을 보여주는 거죠."
이번에도 SPC 측은 그룹 대표 명의의 사과문과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안전경영 투자 플랜을 확대 연장하고, '안전경영위원회'를 외부 산업안전 전문가 중심으로 보강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현재순/건강과생명을지키는사람들 공동대표]
"안전 경영 시스템을 강화한다고 하고 있단 말이에요. 지금. 똑같은 얘기예요. 그때하고 똑같은 얘기. 그런데 뭐 달라진 게 없어요. 그래서 말잔치뿐이다."
SPC 그룹은 지주회사 격인 파리크라상 밑에 빵을 만들어 파는 샤니와 SPC 삼립, 냉동반죽 등을 공급하는 SPL 등 주요 계열사들이 모여있습니다.
그리고 파리크라상은 허영인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룹사에서 잇따른 3건의 사망사고.
그렇지만 허 회장은 법적인 책임을 진 적은 없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는 사고이지만 그 대상은 해당 사업장의 경영책임자, 즉 계열사의 대표이사 등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망사고로 입건된 사람도 SPC삼립 대표이사로 임명된 지 반년도 안된 김범수 대표이사였습니다.
[김성희/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절대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는 그룹 회장이 처벌에서 계속 빠지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그룹 회장이 사실은 이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공장을 돌아가면서 이런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스트레이트는 노조파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허영인 회장을 찾아가 입장을 물어봤지만,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허영인/SPC그룹 회장]
" ‥‥‥. ‥‥‥."
■ 사람보다 빵
◀ 이휘준 ▶
임 기자가 허 회장에게 질문도 했지만, 대책을 시행했는데도 사고가 이어지는 이유 도대체 뭡니까?
◀ 임명찬 ▶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스트레이트는 SPC공장 근무 경험이 있는 복수의 노동자들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대답은 "빵이 사람보다 우선인 회사"라는 것이었습니다.
◀ VCR ▶
흰색 작업복에 노란 모자를 쓴 노동자.
SPC에서 잇따르는 산재 사고의 원인을 알아보고 싶어 지난해 샤니 영남공장에 취업한 노무사 공의정 씨입니다.
[공의정/노무사(SPC 계열사 공장 근무 경험)]
"작년 9월부터 11월까지 근무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계약직 비정규직으로 일을 했었고. '여기는 뭐 어떤 곳이길래 빵을 만드는데 왜 이렇게 사람이 죽어 나가지'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그가 기록했던 일기.
"업무상 사고가 발생"해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면서 보건교육은 영상으로 대체됐습니다.
9월 26일에도 "전날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적혀있습니다.
10월 29일엔 오븐 담당 직원이 사고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1월 8일엔 포장라인에서 기계에 손을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고 13일에는 공 씨 본인도 머리를 다쳤습니다.
바로 다음 날에는 크림단팥빵에 크림을 넣는 크림기가 떨어져 누군가 또 머리를 다쳤습니다.
[공의정/노무사(SPC 계열사 공장 근무 경험)]
"크림빵을 주입을 하다가 이제 나사가 풀려서 이제 쇳덩어리로 된 이제 크림 통이 이제 머리에 떨어지는 그런 사고가 있었어요. 근데 그때 엄청 쿵 하는 소리가 들리긴 들렸는데 제가 옆 라인에서 컨베이어 벨트는 이제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고 있고‥"
2개월 동안 기록된 것만 6번이었고, 기록되지 않은 작은 사고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공의정/노무사(SPC 계열사 공장 근무 경험)]
"거의 매일같이 작은 사고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망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수많은 그런 작은 사고들이 있기 때문에 결국 사망 사고로까지 이어져 나가는 거고‥"
흰색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이 일제히 손가락으로 사고 위험이 높은 기계를 가리키는 사진.
샤니 공장에서 시행되는 이른바 안전활동의 실체였습니다.
[공의정/노무사(SPC 계열사 공장 근무 경험)]
"사진을 촬영해서 그냥 단톡방에 올린다거나 그런 형식적인 대응책을 내세워서 실행을 하고 있더라고요. 실제적으로 어떤 안전사고가 예방이 된다거나 그런 실효성은 없는 거죠."
하지만, SPC측은 공씨의 일기에 기록된 6건의 사고 모두, 발생 이력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고가 반복되는 배경엔 빵 생산 속도를 노동자의 안전보다 우선시하는 SPC의 조직문화가 있었습니다.
삼립 시화공장에서 양 모 씨가 숨진 지 불과 9일 뒤인 지난달 28일.
계열사 SPL 공장에 고위 임원이 방문했습니다.
바로 2022년 박선빈 씨가 사망한 공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임원이 내린 특별지시는 생산라인 기계가 돌아가는 속도를 더 빠르게 하라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SPL(SPC 계열사) 공장 노동자]
"'최고 속도가 28인데 왜 24로 돌리냐' 그걸 이제 너무 늦다고 과장한테 이야기하니까. 품목마다 그 기계 돌리는 속도가 다 틀린데 '품목별 최고속도로 돌릴 수 있는 거 다 조사해가지고 자기한테 보고하라' 이런 지시가 떨어져 가‥"
벨트 속도가 올라가면 작업자들이 노출되는 위험도 높아집니다.
[SPL(SPC 계열사) 공장 노동자]
"그래서 저희들 작업자들 우리 그 얘기 듣고 욕을 했죠. 아직도 정신 못 차린다고."
이에 대해 SPC 측은 일시적으로 정상적인 상태보다 속도가 늦어진 라인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사람이 다쳐도 생산라인을 긴급 중단하는 건 다른 세상 이야기입니다.
[던킨도너츠(SPC 계열사) 노동자]
"제 동료 중에 청소를 하다가 손가락 절단된 사람이 있었거든요. 행주로 막 닦다가. 그런데 그때도 비상(정지) 버튼을 누른다 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뺐어요. 손만 빼고 이렇게 행주로 감싸고 병원을 데리고 갔죠."
비상정지 버튼은 핵폭탄 버튼이라고 불립니다.
[SPL(SPC 계열사) 공장 노동자]
"우리 '핵폭탄', 이거 버튼 누르려면 망설이지. 생각을 엄청 많이 하고 망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여기는 일반 직원들 특히 포장 반에서는 그 버튼 반장도 못 누른다니까요. 그런데 일반 직원이 어떻게 그걸 멈추겠습니까?"
[어원석/숭실대 안전융합대학원 교수]
"사실 좀 많이 놀랐습니다. 지금 중대재해처벌법이 2021년도에 이제 시작이 됐고 이런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그 인터뷰의 내용을 보면 조직의 안전 문화는 뭐 전혀 없는 그런 개념, 그런 느낌 그런 것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네, 좀 심각합니다."
빵과 과자 생산 상위 20개 업체 중 SPC 계열사는 6곳.
생산액 점유율은 33.9%입니다.
그런데 재해 사고 건수는 이 점유율보다 훨씬 높은 40.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사망사고가 발생한 곳은 SPC계열사밖에 없었습니다.
[강태선/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
"좀 악성 사고거든요. 그러니까 벨트 컨베이어라는 대표적으로 눈에 보이는 유해 위험요인. 누가 봐도 관리 대상이고 그래서 비교적 사고가 나지 말았어야 될 사각지대라고 보기 어려운 사고인데, 일선 근로자한테도 권한을 주어서 전혀 불이익 없이 현장의 모든 유해 위험을 드러내고 밝힐 수 있는 그런 분위기까지 조성한 것 같지는 않아요."
SPC측은 안전과 관련하여 모든 것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자체적으로 직원들이 안전하게 일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공의정/노무사(SPC 계열사 공장 근무 경험)]
"빵이 기계에 끼이거나 어떤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업무가 이제 딜레이(지연)가 되잖아요. 노동자들이 알아서 본인의 휴게 시간을 벌어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빵을 살리러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고 있는데도 손을 넣게 되고 빵을 빼내야 되고.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 상황에 처하니까. 그래서 저도 그 장갑이 빨려 들어간 적도 있었고‥"
[현재순/건강과생명을지키는사람들 공동대표]
"삼성중공업에서 크레인이 전복돼서 5명의 노동자가 돌아가셨는데 그때도 국민조사위원회를 꾸렸어요. 그 회사의 전반적인 조직 문화와 안전 문화까지 다 조사를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산업재해 예방 대응 대비를 위해서는 국민조사위원회, 국민검증위원회 구성해서 운영해라. 그래야만 뭔가 바뀔 수 있는게 된다."
임명찬 기자(chan2@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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