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이건희 회장이 취임하기 전 삼성전자는 세계무대에서는 큰 존재감이 없는 가전업체였는데요.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과감한 혁신과 투자를 통해 세계1위의 반도체-모바일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경유착과 불법 경영권 승계 논란, 노조 탄압 등의 폐해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빛과 그림자를 서유정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리포트 ▶
1987년, 초일류 기업 성장을 약속하며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른 이건희 회장.
삼성의 주력 사업을 섬유화학에서 전자로, 다시 반도체로 옮기며, 때마다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고, 92년엔 세계 최초로 64메가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면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습니다.
취임 5년째이던 1993년에는 혁신을 강조한 이른바 '신경영' 선언으로, 휴대전화 등 새로운 사업 진출을 예고했습니다.
[이건희 회장/(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한 번 바꿔봐…뒤엎어 보자."
이듬해 휴대전화를 출시하고 불량률이 11%에 달하자, 제품 500억원 어치를 직원들 앞에서 불태우며 품질 경영을 강조했던 일화는 지금도 유명합니다.
이같은 노력 끝에 국내 휴대전화 1위를 차지한 삼성은, 이후 애플과의 경쟁 속에서도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1위로 도약했고, 이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이던 삼성그룹 매출은 30여년 뒤 387조원으로 40배가량 뛰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뚜렷한 공적만큼 그림자도 짙었습니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사건에서 250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선 정치권과 검찰에 이른바 떡값 제공을 논의한 녹취가 공개돼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등을 통해 60억원으로 아들 이재용 부회장을 에버랜드 최대주주로 만든 불법 경영권 승계 논란은,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와 함께 특검 수사로 이어졌습니다.
선대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