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벌어진 오키나와의 한 공원입니다. 당시 전쟁에 강제로 동원돼 희생된 조선인 만여 명 가운데 기록이 남은 건 5백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마저도 유해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지은 기자가 유해 발굴 현장을 추적했습니다.
[기자]
지금은 우리에게 휴양지로 알려진 오키나와 모토부 항구입니다.
잔잔한 옥색 바다가 펼쳐진 이곳은 2차 대전 당시 치열했던 전쟁터였습니다.
2년 전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발굴한 미국 라이프 잡지의 사진입니다.
한 미군이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의 비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진 속 비석에서 창씨 개명을 한 조선인 2명이 눈에 띕니다.
[오키모토 후키코/강제징용 연구자 : 모토부정 교육위원회에서 발행한 지역 역사사진집에 이 사진이 있었고, 어느 군 소속인지 자료를 찾기 시작했어요.]
90년 넘게 이곳에 살았던 주민도 당시 시신들을 목격했다고 말합니다.
[나카무라 히데오/주민 : 저기서 (군인들이) 불을 피우고 있었고 한쪽에 시신이 있고 하니까, 시신을 태우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이들은 조선에서 강제 징용된 20대 남성, 김만두 씨와 명장모 씨.
1945년 1월 22일, 일본 보급선 히코산마루호에 탔다가 미군 격침에 사망했습니다.
[김정희/김만두 씨 조카며느리 (경남 통영시) : 우리 시아버님과 같이 끌려가셨는데, 시아버님은 어떻게 해서 돌아오셨고요. 약주만 드시면 나쁜 O들, 일본 O들이라고.]
한국과 일본, 대만 시민단체들은 사진과 증언을 단서로 이들의 유해를 찾기 시작됐습니다.
75년이 지난 지금, 이 묘표가 있었던 곳은 모토부항 인근의 한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 사진 속 이름 명장모, 김만두 두 명의 유골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입니다.
발굴 첫날, 사진 속 배경으로 보이는 섬을 기준으로 위치를 추정했습니다.
중장비부터 호미까지 동원됐지만, 바위가 많아 발굴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발굴 마지막 날, 바위틈 사이에서 사람 뼈로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