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후보직을 수락한 날입니다.
컨벤션홀 한 켠의 익숙한 얼굴, 루퍼트 머독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디어 재벌이 수십년 간 미국 정치 행사에 참석한 적은 없었다"는 머독 측 발언을 전했습니다.
머독은 미국 폭스뉴스와 뉴욕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친트럼프 매체들을 거느린 언론 재벌입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등을 지지하며 보수진영의 '킹 메이커'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머독의 촉은 때론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기도 했습니다.
2008년 대선 때 무명이었던 오바마의 승리를 점치는가 하면, 지난 대선 때도 바이든이 이길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지난 영국 총선에선 머독 소유의 최대 일간지 '더 선'이 보수당을 버리고 노동당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이젠 바뀌어야할 때"라는 사설이 나간 그 날, 노동당은 14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습니다.
다만, 일부에선 머독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공화당 부통령 지명을 둘러싼 정치게임에서 트럼프의 장남에게 참패했다는 겁니다.
머독은 트럼프에게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를 강력하게 추천했지만, 결국 트럼프 주니어가 민 밴스 상원의원이 러닝메이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트럼프 주니어는 이젠 낡은 미디어와 작별해야 한다고 아버지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 행사에선 머독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만약 공화당에서 살아남고 싶으면 머독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던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나는 이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류 케이블 방송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아요. 앞으로 나아가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머독의 정치적 입지를 다시 세워준 건, 공교롭게도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입니다.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의 강력한 대선주자로 떠오르자 상황이 급변한 겁니다.
해리스에 쫓긴 트럼프가 먼저 나서, 낡은 미디어 '폭스뉴스'를 찾았습니다.
"대선주자 TV토론은 편향된 ABC가 아니라, 폭스뉴스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해리스를 'DEI(Diversity 다양성·Equity 형평성·Inclusion 포용성) 대통령'이라고 표현하며, 여성이자 흑인이란 이유로 대선 후보가 됐다고 맨 앞에서 공세를 편 것도 머독이 소유한 '뉴욕포스트'였습니다.
어쩌면 공화당의 태양은 아직 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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