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사육 공장·실험실은 잊고…진흙 밭 구르며 행복해야 ‘돼지’

2024.09.12 방영 조회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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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돼지 생크추어리인 ‘새벽이 생추어리’에서 지난달 28일 돼지 ‘새벽이’가 마당을 거닐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돼지 ‘새벽이’는 늙은 오이를 아삭아삭 씹어먹는 걸 좋아하고, 진흙 구덩이에 들어가 몸을 뉘이는 걸 즐긴다. 새벽이보다 몸집이 작은 또 다른 돼지 ‘잔디’는 울타리를 넘어 긴 ‘산책’을 나가고 종종 코로 땅을 파 부드러운 흙 냄새를 맡는다. 돈가스, 제육볶음, 소시지, 족발의 원재료인 바로 그 돼지들이다. 새벽이는 2019년 동물이 ‘고기’로 길러지는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태어났다. 생후 2주차가 됐을 때, 동물권활동가들은 경기도 화성시의 한 종돈장에서 새벽이를 ‘공개 구조’(open rescue)했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돼지들은 6개월이면 도축된다. ‘훔친 돼지’는 그렇게 살아남아 올해 5살을 맞았다. ‘동물해방의 새벽’을 바라는 의미에서 ‘새벽이’가 됐다. 제약회사 실험실에 있다 안락사 직전 구조된 ‘잔디’는 2020년부터 새벽이와 동거한다. 잔디란 이름엔 강인하고 굳세게 자라란 바람이 담겼다. 약 1917㎡(580평) 면적의 새벽이 생추어리는 돼지 ‘새벽이’와 ‘잔디’가 나눠쓰는 나무 집과 각자 따로 이용하는 앞 마당으로 구분돼 있었다. 한겨레 뉴스룸 유튜브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한겨레는 새벽이와 잔디가 사는 ‘새벽이 생추어리’를 찾았다. 수도권에서 서너 시간 달려야 나오는 지방 도시, 사람이 사는 마을으로부터 족히 20분 이상 떨어진 외진 골짜기였다. 하늘과 맞닿은 듯 높고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이유는 “거주 동물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새벽이 생추어리의 첫 번째 운영 목표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예방적 살처분과 혐오 범죄를 피하기 위해 활동가들은 자세한 위치를 알리지 않고 있다. 오후 2시 낮 기온 33도의 더위. 여름 내내 이어진 폭염은 돼지들의 보금자리에도 뙤약볕을 드리웠다. 그늘에서 쉬던 새벽이와 잔디가 낯선 사람의 냄새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얼굴을 내밀었다. “새벽이는 청력이 정말 좋아요.” 새벽이 생추어리의 운영활동가 ‘생강’의 목소리를 듣고 새벽이가 천천히 울타리로 다가왔다. 몸 길이 1.75m, 몸무게 200㎏ 이상의 커다란 몸집에 자다 나온 듯 두 눈은 반쯤 감았지만, 촉촉하고 동그란 코를 연신 벌름거리며 누가 왔나 살피는 모양새였다. 2019년 공개구조 당시 경기도 한 종돈장의 모습. 엄마 돼지들은 앉았다 일어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움직임이 불가능한 스톨(Stall·번식틀)에 갇혀 있었다. 디엑스이코리아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약 1917㎡(580평) 면적의 새벽이 생추어리는 두 돼지가 나눠쓰는 ‘나무 집’과 각자 따로 이용하는 앞 마당으로 구분돼 있었다. 마당에는 작은 언덕과 진흙 목욕을 할 수 있는 웅덩이, 돼지가 등을 긁거나 더위를 피하는 커다란 원통 등이 놓여 있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평온하고 잘 정돈된 이곳은 국내 최초·유일의 돼지 생크추어리(위험에 처했거나 갈 곳 없는 동물을 수명이 다할 때까지 보호하는 시설)다. 보호시설 울타리의 문이 열리자, 잔디가 사람을 반기듯 가까이 다가왔다. 활동가가 잔디의 머리 주변을 쓰다듬자 만족스러운 “킁킁”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진흙이 담긴 웅덩이에 한바탕 구르고, 코로 낮은 둔덕의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흙 속의 미생물을 섭취하고 냄새를 맡기 위해 코로 흙을 파거나 밀어넣는 ‘루팅’(Rooting)이란 행동이었다. 활동가들은 잔디가 1960년대 실험동물로 개량된 ‘괴팅겐 미니어처 피그’ 종으로, 실험실에서 태어났을 것이라 짐작한다. 뉴스룸 유튜브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약회사 실험실에 있다가 안락사 직전 구조된 잔디는 2020년부터 새벽이와 ‘동거’ 하고 있다. 잔디는 실험동물로 개량된 ‘괴팅겐 미니어쳐 피그’로 짐작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흙을 이처럼 좋아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활동가들은 잔디가 1960년대 실험동물로 개량된 ‘괴팅겐 미니어처 피그’ 종으로, 실험실에서 태어났을 것이라 짐작한다. 보호시설 방문 전 사전 회의에서 활동가 ‘그린’은 “잔디는 처음에 흙 밟는 걸 되게 어색해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새 보금자리로 이사한 뒤로는 비가 와도 3시간씩 산책을 한다. 새벽이 생추어리는 지난해 12월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보호 장소를 한 차례 옮겼다. 새벽이에게도 비슷한 심리적 트라우마가 있다. 새벽이는 커다랗고 늠름한 체격을 갖췄지만, 넓은 귀 뒤쪽과 옆구리에 피부염 증상이 있고 꼬리가 짧게 잘려 있다. 고기용 돼지를 기르는 ‘비육농가’에서 태어난 돼지들은 어린 시절 꼬리가 잘리고, 어금니가 발치되며, 거세 당한다. 먼지와 암모니아가 가득한 환경 탓에 쉽게 피부염을 앓는다. 생강 활동가는 “이런 환경의 노동자들이 대부분 남성이라 그런지 유독 남성을 경계한다”고 설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이는 남성 취재진이 울타리에 다가갈 때마다 코로 울타리를 밀며 경계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신뢰 관계를 맺은 활동가들에게는 쉽게 온몸을 맡겼다. 현미와 보리, 서리태와 고구마, 비트가 곁들여진 이른 저녁을 먹는 새벽은 앞뜰에 놓인 야자수 매트에 길게 몸을 뉘였다. 활동가는 브러시로 새벽의 몸을 마사지하고 털을 정리했다. 때로는 직접 만든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기도 한단다. 경기도 화성의 한 종돈장에서 생후 2주차 구조된 새벽이는 유독 남성에게는 경계 행동을 보였지만, 신뢰관계를 맺은 활동가의 손에는 편하게 온몸을 맡겼다. 활동가는 “농장 노동자들이 대부분 남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라 추정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활동가 ‘혜리’는 “새벽이와 잔디 모두 피부가 굉장히 약하다. 원래 피부가 어둡고 털이 많은 멧돼지를 가축화하며 사람의 눈에 띄기 쉽고, 고기로 소비하기에도 부담 없는 흰색 피부로 개변(개량)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혜리 활동가는 이날 생강 활동가가 돼지들을 돌볼 동안 두 돼지의 마당에 ‘삼색버드나무’를 심는 작업을 진행했다. 후원자의 이름으로 나무를 심어 보금자리에 그늘을 더 늘리려는 의도다. “돼지를 돌보며 기후위기의 피해가 동물에게 더 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돼지의 체온은 38~39℃로 더 높아서, 더위에 취약하거든요. 올해는 유독 더워서 새벽이가 심하게 헐떡였다는 기록이 돌봄 일지에 많았어요.”(혜리) 사람은 시원한 음료를 마시거나 냉방기가 나오는 실내에 머물 수 있지만, 돼지를 비롯한 농장동물과 야생동물은 맨몸으로 기후변화를 고스란히 겪는다는 말이다. 지난 11일 행정안전부 집계를 보면, 올해 폭염으로 폐사한 돼지의 수는 9만7000여 마리였다. 소와 닭 등 다른 농장동물을 포함하면 그 수는 132만여 마리에 달한다. 국내 유일 돼지 생크추어리인 ‘새벽이 생추어리’에서 지난달 28일 돼지 ‘새벽이’가 진흙 목욕을 즐기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나마 넓은 마당과 집이 있는 두 돼지에게는 다행이 아닐까. 활동가들은 그러나 새벽이 생추어리가 “마냥 행복하게 평화로운 동물들의 낙원으로 그려지는 것을 경계”한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 안에 사는 돼지들과 새벽이, 또 다른 실험동물과 잔디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린 활동가는 “흔들리는 땅 위에 아무리 튼튼한 건물을 세워도 그 건물이 안전하지 않듯, 종차별적인 사회에서는 아무리 안전한 피난처를 만들어도 흔들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에는 아직 생크추어리의 설립과 관리 등을 지원할 법률이 없다. 새벽이 생추어리는 사육곰을 돌보는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홀스타인 종의 소를 보호 중인 ‘동물해방물결’ 등과 함께 ‘생추어리를 생각하는 모임’을 꾸리고 관련법 입법과 생크추어리 가이드라인 등을 만들고 있다. 글·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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