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제 강점기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싸우고 변호하며 일본의 양심, 일본의 쉰들러 리스트로 불린 일본인 변호사가 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행적을 도쿄 정원석 특파원이 따라가 봤습니다.
[기자]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한 주택가에 있는 작고 평범한 공원입니다.
여기엔 한 사람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요.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 라는 글을 남긴 인권 변호사 후세 다쓰지가 그 주인공입니다.
일본인 최초로 지난 2004년, 우리 정부의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1919년 2.8 독립선언으로 검거된 조선인 유학생들을 변호하고 간토대지진 당시엔 학살당하던 조선인들을 대피시키곤 한국 신문사들에 사죄한다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간토대학살의 희생양이 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부부의 변론을 맡았고, 가네코 사후엔 유해를 한국으로 옮겨주기도 했습니다.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이시노마키시 박물관.
작은 전시 공간엔 이곳 출신인 그가 학생 때 쓰던 물건과 변호사 법복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인권 변호사로 노동운동과 조선인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쓰인 부분과 일본 패전 후 도쿄에서 열린 3.1운동 기념회에 참석했을 당시 사진이 일제에 맞섰던 후세의 행적 전부입니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자료들은 박물관 보관실에 있었습니다.
그가 쓴 '운명의 승리자 박열'의 초고.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하며, 일본의 조선침략을 마음으로부터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적었습니다.
조선인들을 무료 변론한 법정 자료들,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상대로 토지회수운동을 전개할 당시 자료들도 눈에 띕니다.
[이토 타쿠미/이시노마키시 박물관 연구원 : (후세 관련 자료들이) 5천점이나 있는데 아깝죠. 연구하면서 주제를 정해 더 많은 자료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후세를 '우리 변호사'라고 불렀던 조선인들이 그의 장례식에 보낸 애도 시, 천은 낡았지만 추모의 마음은 바래지 않았습니다.
양심에 따라 일제에 맞서다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당했던 후세.
이런 용기 있는 행동에도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마쓰우라 겐타로/변호사 (후세를기리는모임 회장) : 법조계에선 굉장히 유명한 분이지만… 그의 공적을 연구해서 지역에서부터 점차 널리 알려 나가려고 합니다.]
내일(13일)도 그의 기일을 맞아 현창비 앞에선 작게나마 추도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영상디자인 허성운 강아람]
정원석 기자 , 강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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