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할매들이 못 배운 한을 랩으로 토해 냅니다.
"황학골 셋째 딸로 태어났어. 오빠들은 모두 공부를 시키고, 딸이라고 나는 학교 구경 못했지. 우라○ 우라○ 우라○"
후렴 삼아 내뱉은 말은 포승줄 '오라'에서 유래했습니다. 사극에서 포졸들이 들이닥쳐 외치곤 하지요. "냉큼 오라를 받으라!"
죄인이 포박 당하는 건 '오라를 지다' 라고 합니다. 그 '오라지다'에서 '오라질'이 나왔고, 다시 '오'가 '우'로 바뀐 겁니다.
우리 비속어엔 법 집행과 형벌에서 나온 말이 여럿입니다.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사람을 가리킵니다.
'연장은 고쳐 써도,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공자도 포기한 친구가 있습니다. 원양(原壤)이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맞이하자 공자가 혀를 찼습니다.
'어려서는 공손할 줄 모르더니, 어른이 돼서도 이룬 일이 없구나. 늙어서는 죽지 않으니, 이거 도적일세'
오늘 대통령 관저에서 벌어진 극한 대치는 우리 정치사에 가장 참담한 장면으로 남을 겁니다. 오라를 받으라는 공수처와 저지하는 경호처의 실랑이보다 슬픈 건, 대통령이었습니다.
한 두 시간 지켜보다 스스로 걸어 나올 줄 알았습니다. 현직 대통령답게 경호처 직원들이 다치지 않도록 물러나게 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전 검찰 총수답게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자세까지는 바라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한마디 한 뒤 당당하게 오라를 받을 줄 알았습니다.
대통령은 국민과 세계가 지켜보는 내내 인의 장막 뒤에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문을 부숴서라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체포 작전 전날, 관저 앞 지지자들에게 전한 감사 편지 역시 정치 흑역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 겁니다. '애국 시민'으로 부르며 빛과 어둠처럼 갈라 쳤습니다.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키자.'
불교에선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세 가지 독으로 꼽습니다. 거기에 거짓말 험담 이간질을 비롯해 일곱을 더 한 것이 열 가지 큰 죄이지요. 연민을 넘어 슬픔이 솟습니다.
1월 3일 앵커칼럼 오늘 '슬픈 대통령' 이었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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