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4일 (목) 밤 10시 1TV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옥고를 거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을 피고인에게 법원이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12월 17일 열린 화성8차사건 재심 최종 선고 공판. 수원지방법원 형사12부의 박정제 부장판사는 윤성여 씨에게 사법부를 대표해서 사과한다고 말했다. 윤 씨가 화성8차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된 지 32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경찰이 발표한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의 혈액형은 B형, 윤성여의 혈액형은 B형, 그러나 진범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
1988년 9월 발생한 화성8차사건. 범행 장소는 피해자의 방 안이었지만 이곳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목격자도, 지문도 없었다. 범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체모 몇 점만 있었을 뿐이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체모 분석을 의뢰했다. 며칠 뒤, 범인의 혈액형이 ‘B형’이란 결과가 나오자 경찰은 앞선 일곱 번의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연관을 지었다. 이 사건은 그렇게 ‘화성8차사건’으로 불렸고 범인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화성 일대에 사는 B형 남자는 모두 용의 선상에 올랐다. 윤성여 씨도 그중 하나였다. 윤씨는 경찰에게 수 차례 체모를 뽑아줬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사건발생 후 10개월이 지난 1989년 7월, 경찰은 22살 농기계 수리공 윤성여 씨를 검거했다. 당시 최첨단 기술이라 일컬어지던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 결과, 윤 씨의 체모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체모와 같은 성분이라는 게 결정적 이유였다.
재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춘재의 증언으로 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스스로 화성8차사건의 진범이라 자백한 이춘재는 피해자의 집에서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주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주요 용의 선상에 오른 적이 없었던 이유는 그는 ‘B형’이 아닌 ‘O형’ 남자였기 때문이다. 현장 검증의 오류도 지적됐다. 장애를 가진 윤 씨가 담을 뛰어넘어 범행 현장에 들어갔다는 경찰과 검찰. 정작 이춘재는 담이 아닌 대문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범행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숨기려 한 적이 없다며 자신이 검거가 되지 않았던 사실이 도리어 의아했다고 말한다.
“내가 그 당시에 구속이 됐잖아.
누나, 동생들 얼마나 손가락질받았겠어 사람들한테.
그 가족이나 친척들은 욕을 많이 먹어, 손가락질을 많이 받고.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어“
이춘재가 자백한 지 1년이 지났다. 그 시기 윤성여 씨는 이춘재의 자백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20여 년의 형기를 마치고 이제야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있었는데, 또다시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 누구보다 싫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 씨가 재심을 청구하고, 이름과 얼굴을 공개한 이유는 단 하나. 살인자의 누명을 온전히 벗고 ‘떳떳한 아들’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는데……,
재심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윤성여 씨의 여정을 기록한 [성여 2부- 다시 찾은 이름]. 12월 24일(목) 오후 10시 KBS 1TV에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