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노벨 문학상 탄생…'채식주의자' 작가 한강 영예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상은 책을 쓴 다음의 아주 먼 결과잖아요.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설가 한강이 2016년 5월 영국의 세계적인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받고 난 뒤 귀국해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노벨상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한 대답이다.
이 자리에선 언론과 대중의 큰 관심이 부담스럽다는 듯 얼른 귀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심정도 드러냈다.
"오늘 이 자리가 끝나면 얼른 돌아가서 지금 쓰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글을 써가면서 책의 형태로 여러분께 드리고 싶어요. 최대한 빨리 제 방에 숨어서 글을 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요."
한강은 지난해 11월 프랑스 메디치상 외국문학 부문을 한국 작가 최초로 받은 뒤에도 기자회견에서 "노벨문학상이 가까워졌다고 보나"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런 얘기는 처음 들었는데요"라며 가당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10일 한국 작가 최초로, 아시아인 여성 작가로는 세계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한강은 이 자리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완성한 순간이 소설을 써오면서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고 꼽았다.
"쓰는 중간에 완성 못 할 것 같은 고비도 많았고, 편집자에게 못 쓰겠다고, '죄송하지만, 완성 못 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기도 했어요. 완성하기까지 7년이 걸렸는데, 제겐 상 받은 순간이 기쁜 게 아니라 소설 완성한 순간이 가장 기뻤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을 쓰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심적으로도 괴로웠다고 작가는 강조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강이 2016년 '채식주의자'로 영국 최고권위 문학상인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뒤 5년 만인 2021년 펴낸 장편소설로, 제주 4·3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집에 가서 어머니 정심의 기억에 의존한 아픈 과거사를 되짚어간다는 내용이다.
"소설 쓰면서 정심의 마음이 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아침에도 정심의 마음으로 눈뜨려 하고, 잠들 때까지 '정심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되뇌며 그 뜨거움과 끈질김에 대해 계속 생각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2014년작 장편 '소년이 온다'와 4·3의 비극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까지, 한강은 한국 현대사의 깊은 어둠과 상처에 천착해온 소설가다. 작가는 앞으로는 밝은 얘기를 써보고 싶다고도 했다.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소설은) 이렇게 두 권을 작업했는데, 이제는 더는 안 하고 싶어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눈이 계속 내리고 너무 춥고, 이제 저는 봄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서 작가는 차기작에 대한 힌트도 내비쳤다. "생명에 관한 소설"이라고 그는 말했다.
"뜻대로 될 진 모르겠는데, 생명에 대한 생각을 요새 많이 해요. 원하든 원치 않든 받아 든 선물인 이 일회적 생명을 언젠가는 반납해야 하잖아요?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진척시켜서 봄으로 가는 다음 소설을 쓰고 싶어요."
2016년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수상한 뒤 국내 기자회견에선 수상작만 읽지 말고 다른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널리 읽어달라는 당부도 했다. 사려 깊고 배려심 많은 작가라는 문단의 평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 소설만 읽으시지 말고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동료 선후배 작가들이 많은데 조용히 묵묵하게 방에서 자신의 글을 쓰시는 분들의 훌륭한 작품도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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