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은준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본인 제공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인간형 로봇(Humanoid robot)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뜨겁다. 작년까지 인공지능은 생성형 AI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그 다음 수순은 '피지컬 AI' 시대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실물로 나타나 실제 그동안 사람이 했던 서비스를 하는 시대로, 로봇에 인공지능을 탑재한 형태다.
서비스 로봇 시장의 규모는 2029년 15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작년 하반기에 많은 중국 기업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대량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삼성전자가 국내 대표 로봇 기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시킨다는 뉴스로 떠들썩했다.
2대 주주로 있던 레인보우로보틱스에 대해 내달 17일까지 콜옵션(2천675억원)을 행사하기로 하면서 지난해 기존 투자금 868억원에 3천500여억원을 더 투자해 연결 재무제표상 자회사로 편입시킬 예정이다. 대표이사 직속의 미래로봇추진단까지 신설됐으니 서비스 로봇 산업 경쟁에 국내 대표 기업 삼성전자까지 합류한 상황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국내 최초로 2족 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한 카이스트 휴보 랩 연구진이 2011년 설립한 회사다. 삼성전자의 서비스 로봇 시장에 대한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이은준 교수 제작 이미지(Copilot 사용)
LG전자와 현대차그룹, 한화 등 다른 대기업들도 로봇 신사업에 대한 투자와 업체 인수에 나서고 있다.
LG전자가 2대 주주로 있는 로보티즈는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이 재작년 12월 조사한 '최고 서비스로봇 시장 목록'에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선정됐다. 현대차그룹도 2021년 1조원에 인수한 미국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함께 로봇개 '스팟',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등을 개발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재작년 한화로보틱스를 신설했으며 협동 로봇·무인 운반차(AGV)·자율이동로봇(AMR) 사업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올해 인공지능의 최대 화두는 피지컬 인공지능이다.
마켓앤마켓의 전망대로 서비스 로봇 시장이 2029년 150조원에 이른다면 연평균 15.9% 성장률이다. 이 분야는 의료·택배뿐 아니라 무인 운반, 건설 등 환경·공장·병원·공공 등 전문 분야도 포괄한다.
필자는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이 예술의 영역에도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단순히 인간의 창작 과정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작의 경계를 확장하며 인간이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예술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 에이다(Ai-Da), 로봇 예술가의 탄생
로봇 아티스트 'Ai-Da'의 초기 개발 모습
사진출처 : 로이터
영국의 에이든 멜러(Aidan Meller)는 옥스퍼드와 런던 등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현업 예술인이다. 그는 생성형 AI 예술가 로봇 개발 프로젝트인 '에이다 프로젝트'(Ai-Da Project)를 통해 2019년 예술가 로봇 '에이다'(Ai-Da)를 발표했다. 그 결과물은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제작은 콘월 지방에 있는 로봇 회사 '엔지니어드 아츠'(Engineered Arts)가 진행했다. 에이다의 인공지능 부분은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맡았고 그림을 그리는 로봇팔은 리즈대 전자전기공학부 학부생 살라헬딘 알 아브드(Salaheldin Al Abd)와 지아드 아바스(Ziad Abass)가 개발했다. 에이다라는 이름은 '인공지능'의 약어인 'AI'와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꼽히는 수학자 겸 저술가 러브레이스(Lovelace) 백작부인 에이다 킹(Aida King)의 이름을 땄다.
에이다의 안구에는 카메라가 장착돼있다. 카메라가 인간과 사물의 특징을 인식하면 에이다는 눈을 마주치고 입을 여닫는다. 가까이 가면 마치 충격을 받는 것처럼 깜박거리기도 한다.
에이다와 에이든 멜러
사진출처 : 가디언
에이다는 최초의 초현실적 휴머노이드 로봇 예술가라 할 수 있다. 눈에 장착된 카메라, 정교한 알고리즘, 로봇 팔을 통해 그림을 그리며 퍼포먼스 아트, 협업 페인팅은 물론 조각까지 해냈다. 에이다의 작품은 전통적 예술 기법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을 보여주며, 인간이 예술적 창의성과 기술적 발전의 경계를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급기야는 지난 2022년 영국 상원 통신·디지털위원회 청문회에 발명자인 멜러와 함께 출석해 질문에 답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청문회는 새로운 기술이 예술·창작 분야 산업에 미칠 영향을 토의하는 자리였다. 전국에 생중계된 이날 청문회에서 에이다는 단발 길이의 검은 가발과 짙은 빛깔의 데님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으나, 팔 부분은 기계 골격이 그대로 노출된 채 출석했다.
멜러는 에이다를 세워 놓고 옆에 앉아 "대답을 하는 데 쓰이는 AI 언어모델이 더 나은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미리 제출해 줄 것을 (의원들에게) 요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에이다는 이날 청문회에서 계속 기립한 자세로 의원들의 질문에 답했다. 목과 머리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는가 하면, 눈을 깜빡이고 입을 움직이는 등 인간의 행동을 본뜬 움직임을 보였다. 에이다는 "어떻게 예술 창작을 하며, 창작물은 인간의 창작물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두)눈에 달린 카메라, 인공지능(AI) 알고리즘, AI 로봇 팔을 이용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이를 통해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든다"고 설명까지 했다.
이어 "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자 알고리즘이며, 또 그에 의존한다. 비록 나는 생명체가 아니지만 예술을 창작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우리가 영화 속에서 익히 봤던 장면이 실제 상황으로 펼쳐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에이다는 2023년 7월에는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한 기자회견 행사에도 참석했다. '세계 최초 인간과 로봇의 기자회견'으로 알려진 이 행사에서 에이다는 인공지능 규제 강화를 촉구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말을 상기시키면서 "일부 AI는 규제돼야 한다는 게 AI 분야 많은 저명인사의 의견"이라며 "이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로봇공학의 능력치가 이미 일반인의 상상 그 이상에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사례다. 주최 측은 기자회견의 취지가 "인공지능 기술이 유엔의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인간과 기계의 협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기자회견하는 에이다
사진출처 : EPA
에이다의 작품 'A.I. God'은 2.2m 높이의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인상주의 초상화다. 초기 컴퓨터를 발명한 앨런 튜링을 인공지능이 그렸다는 사실에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A.I. God'은 지난해 11월 런던 소더비 디지털 아트 경매에서 132만 달러(약 19억3천만원)에 낙찰돼 휴머노이드 로봇 작품으로는 최초로 경매에서 판매된 작품이 됐다.
이 작품은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상호작용으로 탄생한 독특한 미학적 배경을 담고 있다. 에이다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대규모 언어모델을 사용하며 작품에 대해 소통했다.
즉, 에이다가 작업을 할 때 협업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많은 유명한 예술가가 여러 기술자와 협업하는 것처럼, 에이다도 '인간' 기술자가 있어 작업을 잘 완성해 나간 것이다.
에이다와 작품 'A.I. God'
사진출처 : EPA
에이다가 여러 초상화를 그리면 기술자가 페인팅과 텍스처 작업을 이어서 하고, 다시 에이다가 그 위에 붓질하며 완성해 나가는 방식이다. 필자는 이 작업 과정이야말로 기술이 예술의 경계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본다. 에이다의 작업이 인간 창의성과 기술의 공존 가능성을 심도 있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에이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예술가' 에이다의 이력서까지 깔끔하게 정리돼있다. 3장짜리 이력서는 웬만한 예술가보다도 화려한 교육, 전시 공연 경력을 자랑한다. 에이다의 등장은 예술가와 예술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고, 창작의 본질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이 로봇이 예술가인지 아닌지, 혹은 이 로봇이 제작한 그림이 예술인지 아닌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적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이제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다 같이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할 때다. 필자가 첫 칼럼에 언급한 바와 같이 아주 먼 옛날에도 '테크네(Techne)와 아르스(Ars)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은준 미디어아티스트·인공지능 전문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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