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닦는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씨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7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열린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재판부는 원청인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사망 사고의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2023.12.7 ksm7976@yna.co.kr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의 5주기를 앞두고 대법원이 원청 기업 대표의 무죄를 확정하자 노동계는 "노동자·시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판결"이라고 개탄했다.
민주노총은 7일 대법원 판결 후 성명을 내고 "(대법원이) 자식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지난 5년간 소송을 이어 나간 유족의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저버렸고, 제2·제3의 김용균이 없길 갈망한 노동자·시민의 염원을 끝내 외면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판결이 "원청의 책임을 묻지 않음으로써 '위험의 외주화'라는 갑질이 산업현장에 만연하는 불평등 산업구조 형성을 법원이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이날 대법원 2부는 2018년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김용균 씨 사망 사고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원청업체 한국서부발전의 김병숙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김 전 사장은 안전보건 방침을 설정하고 승인하는 역할에 그칠 뿐, 작업 현장의 구체적 안전 점검과 예방조치 책임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태안발전본부장에게 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던 1·2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24살 아들을 잃은 후 유사한 비극을 막기 위해 싸워온 어머니 김미숙(53)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기업이 만든 죽음을 법원이 용인했다"고 규탄했다.
5주기 김용균 노동자 영정 앞 국화들
(태안=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 사고로 숨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 5주기인 6일 사고 현장 인근에 마련된 고인의 영정 앞에 추모객들이 헌화한 국화가 쌓여 있다. 2023.12.6 cobra@yna.co.kr
5년 전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발생한 김씨의 사망 사고는 노동계와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과도한 작업량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지적과 더불어 원청이 위험한 작업을 하청 노동자에게 떠맡기는 '죽음의 외주화'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고인의 죽음이 불러온 공분은 그해 말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린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국회 통과로도 이어졌다.
산재 예방 사각지대에 놓인 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고 무분별한 외주화를 막기 위해 하청 노동자의 산재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2020년 1월 김용균법이 시행된 후 한발 더 나아가 안전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도 제정돼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고인의 5주기가 돌아오는 동안에도 우리 산업현장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2021년 11월 경기 여주에서 전기 연결 작업을 하던 3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감전 사고로 숨지는 등 유사한 비극도 이어졌다.
추모 행렬 위 '중대재해 근절' 전광판
(태안=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 사고로 숨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 5주기 현장추모제가 열린 6일 추모객들의 행렬 위로 태안화력의 '중대재해 근절 캠페인' 전광판이 빛나고 있다. 2023.12.6 cobra@yna.co.kr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내년 1월 근로자 50인 미만(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될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의 추가 적용 유예까지 추진하며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노동계는 이날 대법원 판결 이후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시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젊은 노동자가 밤에 혼자 일하다 사고가 나서 목숨을 잃었음에도 결국 원청의 책임은 없다는 이번 판결은 왜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한가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이제라도 김용균 씨와 같은 죽음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통해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온전하게 시행하는 것만이 고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도 성명에서 "참담하고 비통한 오늘 대법원의 선고는 산안법 처벌의 한계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정당성, 엄정한 법 집행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를 강행하는 윤석열 정부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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