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몰라도 되는데 알고 나면 '썰' 풀기 좋은 지식 한 토막. 기상천외한 이웃나라 중국,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이도성 특파원이 전합니다. "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신훙강(新鴻港)농수산물시장의 한 두리안 전문 판매점. 이도성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과일의 왕'입니다. 엄청나게 달고 또 향기로워서 중독성 있죠. 다른 과일은 비교도 안 돼요.”
중국 하이난(海南)성 싼야(三亞)시 신훙강(新鴻港) 농수산물 시장에서 두리안 전문 판매점을 운영하는 30대 청년 장위(張宇)의 말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벌써 10년 넘게 과일을 팔아왔지만 몇 년 전부터는 두리안만 취급하고 있다고 왔습니다.
장위는 동북부 헤이룽장성 하얼빈 출신인데 이 두리안 때문에 고향을 떠나 멀리 4천km 떨어진 중국 최남단 하이난까지 왔다고 합니다.
지난달 16일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신훙강(新鴻港)농수산물시장에서 가족과 함께 두리안 전문 판매점을 운영하는 장위(張宇)가 판매대를 정리하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중국에서는 두리안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사 제목을 빌리면 '중국이 두리안에 미쳐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드셔본 분도 있겠지만 두리안은 특유의 악취로 유명합니다. 2018년 호주 한 대학에서 화학물질 의심 신고가 들어와 소방당국이 출동했는데 알고 보니 두리안이 썩어가는 냄새로 밝혀졌던 사건이 대표적이죠.
냄새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이 많지만 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게 두리안의 매력이라고 합니다.
가시 돋친 단단한 껍질 속엔 샛노랗고 부드러운 속살을 숨기고 있습니다. 버터처럼이나 부드럽다고 하죠. 맛은 달콤합니다. 천사의 맛과 악마의 냄새를 가진 '과일의 왕'으로 꼽힙니다. 칼륨이나 비타민, 식이섬유 등 풍부한 영양분을 가진 건 덤이고요.
지난달 22일 중국 베이징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고객에게 두리안을 주문 받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격은 사악합니다. 중국은 보통 과일을 500g 단위로 판매합니다. 어제(16일) 베이징 시내에 있는 한 마트를 가봤는데요. 두리안은 500g당 28.80위안, 우리 돈으로 약 5,500원이었습니다.
보통 두리안 1개가 2~4kg 정도 하는데요.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1개당 2~4만 원 하는 셈이죠. 같은 곳에서 수박을 500g당 2.98위안에 팔았습니다.
가격 차이가 거의 10배 정도 나죠. 심지어 두리안의 알맹이가 전체 무게의 40% 정도이니까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양은 훨씬 적습니다. 얼마나 비싼 건지 대충 감이 오실 겁니다.
중국 베이징 최대 농산물 도매시장인 신파디(新發地)시장 국제두리안관 입구. 이도성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품종에 따라 훨씬 비싼 것도 많습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죠. 중국 소셜미디어엔 '두리안 등급표'가 돌아다닙니다. 19가지 품종을 7개 그룹으로 구분한 건데요.
가장 상위 '왕자' 등급에 헤이츠(黑刺), 마오산왕(?山王), 진펑(金鳳) 등 3가지 품종이 있고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태국산 진전(金枕)은 6번째에 있습니다.
취재를 위해 베이징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신파디(新發地)를 찾았다가 국제두리안관에서 헤이츠(黑刺)가 팔리는 걸 봤는데요. 500g당 무려 125위안(약 2만 4천 원)이었습니다. 4kg짜리 1개가 무려 19만 원 정도 하는 거죠.
이곳에서 두리안 전문 판매점을 운영하는 궈 모 씨는 “확실히 특유의 맛과 향이 다르다”면서 “비싸지만 인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되고 있는 두리안 등급표. 샤오훙슈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과일 1개가 20만 원 가까이 하는데도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라는 겁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두리안이 중국에서 고급 와인 같은 지위의 상징이 됐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래서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주고받는 선물이 된 거죠.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두리안으로 꽃다발이나 선물 바구니를 만드는 '두리안 꾸미기'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두리안을 이용한 선물바구니 제작 사진. 샤오훙슈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두리안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외식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온갖 음식에 두리안을 넣기 시작한 거죠. 두리안을 먹지 못하는 저는 사진만 보고 피자를 한 판 시켰다가 배달을 받자마자 두리안임을 직감했습니다. 그 냄새가 겹겹이 쌓인 포장지를 뚫고 나왔거든요. 그 뒤로는 두리안을 뜻하는 '榴蓮'이라는 단어를 절대로 잊지 않고 있습니다.
피자뿐 아니라 케이크와 빵, 햄버거 등에도 두리안을 넣어 팔고 있습니다. 두리안을 갈아서 만든 셰이크도 있더라고요. 두리안 음식을 먹어 본 제 지인은 “다른 재료들 덕인지 냄새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생 두리안보다 거부감이 덜 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두리안으로 만든 피자. 한 피자 프렌차이즈업체는 각 품종별로 만든 두리안 피자를 출시했다. 샤오훙슈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렇듯 다양하게 두리안을 즐기는 중국인들은 지난해 전 세계 두리안의 91%를 먹어 치웠습니다. 말 그대로 쓸어 담은 겁니다.
두리안은 주로 동남아 국가들이 생산하는데요. 중국이 지난해 수입한 두리안은 무려 140만 톤이었습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67억 달러, 우리 돈으로 9조 2천억 원인데요. 엄청나죠.
이게 한 해 전보다 무려 60%나 늘어난 수치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곱절로 성장해왔는데요. 중국인의 두리안 사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해볼 수 있겠죠.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신훙강(新鴻港)농수산물시장의 한 과일상점에 두리안이 다른 과일들과 함께 진열돼 있다. 이도성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도 두리안을 생산하기는 합니다. 최남단 하이난성에서요. 두리안 나무는 추위와 습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하이난을 제외한 곳에선 재배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중국신문주간과 인터뷰한 하이난 농업과학원 열대과일연구소 펑쉐제 소장은 “두리안을 재배하기 위해선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면서 습도가 75~85%로 일정하게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폭우나 가뭄 등 기상 변화가 생기면 수확량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기술력과 노하우도 문제가 되겠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0월 “두리안 재배의 비밀을 풀기 위해 중국인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하이난 농부들이 동남아의 두리안 전문가를 초빙해 비법을 전수 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달 16일 하이냔 싼야시의 한 두리안 농장을 찾아가 봤는데요. 제가 만난 농장 관계자는 이곳의 주인이 태국인임을 밝히면서 “농장주는 수확 철에만 잠시 올 뿐이고 평소엔 중국인 직원들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16일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한 두리안농장 입구에 두리안 모형물이 설치돼 있다. 농장 안에는 두리안 판매점과 함께 수백 그루의 두리안 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도성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자국산 두리안 수확량은 소비량의 0.005%에 그쳤습니다. 엄청난 양의 두리안을 소비하면서 생산량은 적다 보니 대부분 수입에 의존합니다. 중국이 두리안 시장의 '큰손'인 셈이죠.
두리안을 팔고 싶은 국가는 태국과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으로 다양한데 거의 모든 두리안이 딱 한 국가에 넘어가다 보니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중국이 '두리안 패권'을 거머쥔 셈이죠. 이는 외교 분야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중국은 원래 태국산 두리안만 수입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22년 처음 베트남과 필리핀에도 문을 열었습니다. 경쟁자를 만들어준 셈이죠. 그 이후 베트남이 무섭게 따라붙었습니다.
베트남 언론들에 따르면 베트남은 지난 1월과 2월 중국 두리안 시장 점유율을 57%까지 끌어올렸습니다. 한때 시장 점유율을 90% 넘게 차지하던 태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지난달 16일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한 농장에 수백 그루의 두리안 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도성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최근 중국 당국이 베트남 업체 33곳에 대해 두리안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과도한 양의 중금속이 나왔다는 이유에서인데요.
이를 두고 두리안으로 베트남을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베트남은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갈등하는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풀브라이트대학의 응우옌 탄 쭝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두리안을 무역 제재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나타냈습니다.
중국 베이징 최대 농산물 도매시장인 신파디(新發地)시장 국제두리안관에서 대형 두리안 모형 앞으로 두리안이 진열돼 있다. 이도성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이 '먹을 것' 가지고 무기 삼은 게 처음이 아닙니다. 앞서 마찬가지로 남중국해 때문에 분위기가 나빠진 필리핀에 대해 바나나 수입을 금지했고요. 대만에도 양안 갈등 때마다 파인애플과 망고 등으로 딴지를 걸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중국은 말레이시아에 대해 생 두리안 수입을 허용했습니다. 그동안은 냉동 두리안만 들여오고 있었거든요. 말레이시아는 5세대(5G) 이동 통신 사업에서 중국 기업의 참여를 허용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브릭스(BRICs)에 가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대표적인 친중 행보를 보여온 국가입니다.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 최대 농산물 도매시장인 신파디(新發地)시장 국제두리안관을 찾은 고객들이 직접 구입한 두리안을 먹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나와 친하게 지내면 '떡'을 건네고 나에게 멀어진다 싶으면 '매'를 주는 모양새죠. 두리안으로 얻게 된 힘을 휘두르며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lee.dosung@jtbc.co.kr
이도성 기자
JTBC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by JTB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