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제주4·3으로 가족을 잃었던 기억과 작별하지 않으려는 유족의 아픈 사랑이 담겨 있다.
한강은 2021년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기념회에서 "1990년대 후반쯤 제주 바닷가에서 3∼4개월 월세로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주인집 할머니가 골목 어느 담 앞에서 '이 담이 4·3 때 사람들이 총 맞아 죽었던 곳'이라고 말씀하셨다"며 "눈부시게 청명한 오전이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사건이 실감으로 다가왔다"고 말한 바 있다.
노벨 문학상에 소설가 한강…한국 작가 최초 수상 쾌거
(서울=연합뉴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지난 2000년 평화상을 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2024.10.10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제주4·3특별법에 의하면 제주4·3은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경찰 발포에 의한 민간인 사망사고를 계기로 저항과 탄압, 1948년 4월 3일의 봉기에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 해제 때까지 무력 충돌과 공권력에 의한 진압과정에서 민간인이 집단으로 희생된 사건'을 말한다.
정부 진상조사보고서에는 당시 적게는 1만4천명, 많게는 3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잠정 보고됐다.
소설에 명확한 장소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제주4·3의 비극이 남아있는 제주 곳곳이 소설의 배경이 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48년 10월 11일 제주도에는 강경 진압을 위해 경비사령부가 설치되고 '해안에서 5㎞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로 간주해 총살한다'는 조치(소개령)가 내려졌다.
이어 11월 17일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돼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 작전과 더불어 해안마을에서도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학살하는 일이 있었다.
4·3 희생자 유해발굴 현장 보고회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3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서 4·3희생자 유해발굴 현장 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2021.3.31 jihopark@yna.co.kr
소설에 등장하는 마을과 같이 해발고도가 높은 중산간 마을의 대표적인 곳이 표선면 가시리다. 겨울철 눈이 심하게 내리면 지금도 사실상 고립되다시피 한다.
제주4·3 당시 총 82개 중산간 마을 중 가시리에서는 421명 이상의 주민이 숨졌다.
노형리(538명), 북촌리(446명)에 이어 세 번째로 희생자가 많았던 마을로 꼽힌다.
1948년 11월 군·경 토벌대가 가시리를 급습해 주민들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다. 가시리 내의 자연마을인 '새가름'과 '종서물'은 폐허가 돼 사라져 버렸다.
1948년 12월 당시 표선국민학교에서 수용 생활을 하던 가시리 주민들은 경찰에 의해 표선리 '버들못'(현 표선변전소 옆 밭)과 표선해수욕장 옆에 있는 '한모살'(당캐)로 끌려가 학살당했다.
가시리에서는 이른바 '대살'도 있었는데, 대살은 중산간 소개령에 따라 해안마을로 내려온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없다면 '도피자 가족'이라고 낙인찍어 가족을 대신 죽이는 것을 말한다.
제주4·3 장편 영화 '비념'의 임흥순 감독은 11일 "영화 '비념'에는 가시리 풍경이 많이 담겨 있고 소설가 한강에게 가시리의 4·3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며 "한국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런 부분을 섬세하게 다뤄 동시대 예술가로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의 책에서 주민들이 백사장에서 무참히 집단 학살된 것과 같이 4·3 당시 백사장 등 여러 해변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가시리와 표선면 토산리 주민, 남원면 의귀리, 한남리, 수망리 등 제주 동부 중산간 주민들은 표선해수욕장 서쪽 옆에 있는 한모살로 끌려와 목숨을 잃었다.
4·3 당시 한모살은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진 곳이다.
한모살은 현재 표선도서관, 제주민속촌, 해비치리조트, 식당가가 들어서 과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제주4·3 행방불명희생자 위령제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2일 오전 제주시 임항로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야외공원에서 제4회 제주4·3 행방불명희생자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2024.4.2 jihopark@yna.co.kr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4·3의 기록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제주공항(옛 정뜨르 비행장)은 1949년 10월 불법 군법회의를 통해 사형선고를 받은 249명과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예비검속으로 연행된 500여명이 집단 학살된 곳이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제주공항과 제주시 화북동, 도두동 등 주요 암매장 지역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벌여 400구가 넘는 유해를 찾아냈다.
군법회의 등으로 수형 피해를 겪은 도민 등은 제주항(옛 산지항) 주정공장(동양척식주식회사 제주주정공장)에 갇혔다가 산지항을 통해 다른 지역 형무소로 끌려갔다.
제주4·3 군법회의 수형인명부에는 2천530명의 이름이 있다.
정부는 2002년부터 순차적으로 현재까지 1만4천871명을 제주4·3 희생자로 판정하고, 11만9천241명에 대해 제주4·3 유족 결정을 내렸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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