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자수'하면 규방의 영역에서 이뤄진 단순 노동 예술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지금부터 보시는 자수 작품들을 보시면 이런 고정 관념이 깨질 겁니다.
장식성 강한 조선 시대 전통자수부터 현대 조형언어까지 넘어온 추상 자수까지
마법 같은 실의 향연! 지금부터 찬찬히 감상해보시죠.
[기자]
촘촘하게 메운 실이 마치 새의 깃털처럼 화면을 가로지릅니다.
속도감 있는 붓질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실과 바늘의 흔적입니다.
공간을 압도하는 자수 팔상도!
자수장 최유현의 작품으로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출가, 열반에 들기까지 이야기를 붓보다 섬세하게 담았습니다.
소나무 위를 노니는 김인숙의 다람쥐는 실의 굵기와 바느질 기법을 달리해 만져보고 싶은 촉감을 구현했고, 배밭 풍경을 자수로 피워낸 손인숙의 작품은 풍성한 꽃들이 실제 바람에 일렁이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작가가 매일 아침 걷는다는 대모산도 셀 수 없는 실의 흔적이 모이니 그야말로 황홀경입니다.
전통 자수 실의 절반 굵기에 무려 1,400가지 색으로 염색한 작가만의 실로 세밀하게 천 위를 오가다 보면 바람결 하나 놓칠 틈이 없습니다.
최근엔 굵은 실을 이용해 가족이란 주제를 풀어가고 있는데, 전통 자수의 영역을 넘어선 수 없는 변주 작업은 해도 해도 즐겁습니다.
[손인숙 / 실그림 작가 : 10시간~13시간까지 정도 해요. (안 힘드세요?) 안 힘들어요 그 대신 딴 거 하면 힘들어요! 물론 바늘과 실이 손으로 작업하지만 가슴에서, 머리에서 나를 지지해주는 거거든요. 그것은 행위에 불과하지.]
아기자기한 생활용품부터 감상용 병풍까지, 한국의 전통 자수는 중국, 일본에 비해 색감과 기법이 명랑하고 화려합니다.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친숙한 설악산 화가 김종학도 전통 자수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박혜성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한국은 일본과 중국에 비해 더 모던하다고 이야기하세요.색도 임의적이고 디자인도 임의적이고 구성도 틀에 박히지 않은 점이 매력적으로 놀랍다는 이야기를 외국 미술관 큐레이터 분이 보시고 하시더라고요.]
규방 예술에서 출발한 자수는 개항과 식민, 전쟁 등의 격변기를 겪으며 역동적인 변화를 거듭합니다.
일본 유학파에 의해 신식 자수가 도입된 이후 할머니와 어머니로 전해지던 자수는 여성 교육의 핵심으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박혜성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근대화된 자수는 전통 자수와 다르게 사생이 중요해요. 사실처럼 보여야 하고 회화처럼 보여야 되기 때문에.]
1945년, 이화여대에 자수과가 생긴 것을 기점으로 자수는 독립적인 학술과 예술 영역으로 들어옵니다.
마치 인상주의 화풍처럼 난로의 온기까지 담아낸 이 작품은 첫 졸업생 김혜경의 작품입니다.
추상이란 조형 언어는 자수 예술에 날개를 달았습니다.
자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박을복은 그림에 밀리지 않는 추상 자수를 대거 선보였고, 송정인의 추상 자수는 1960년대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 봐도 세련됐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자수 역사를 기록한 전시회는 전통 자수부터 근현대 자수까지 바늘과 실에 얽힌 인고의 시간을 방대하게 엮어냈습니다.
마법 같은 실과 바늘의 향연!
한땀 한땀 정성과 진심을 녹여낸 장인들의 손길은 눈길 가는 곳마다 존경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YTN 김정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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