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히 여기소서. 불행한 저를…"
'미제레레'는 17세기 알레그리가 쓴 성가로 거슬러 갑니다. 라틴어 구약 시편, 51편의 기도 '미제레레'를, 루오는 동판화 연작 쉰여덟 점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1차대전 후 야만과 어둠의 시대를 향한 진혼곡이었지요. 화려하게 치장하고 음흉한 미소를 짓는 왕에 부제가 붙었습니다.
'임금인 줄 알지만…'
부유하고 교만한 부인은 '천국에도 특석을 예약할 심산' 입니다. '오후 두 시를 열두 시'라고 떠듭니다.
장광설은 온전히 대통령 몫이었습니다. 기자를 막은 브리핑 룸에서 만4천 자 담화를 51분 동안 읽었지요. 지난달 회견에선 문답만 한 시간 23분 이었습니다.
"이제 (질문) 하나 정도만 해. 목이 아프다, 이제."
그러더니 탄핵 표결을 일곱 시간 앞둔 담화는 2분도 채 안 됐습니다.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저지른 일은 진중하게 성찰하지 않았습니다.
"계엄 선포는 대통령으로서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나라가 나락에 떨어졌는데 '국민에 끼친 불안과 불편'을 사과했을 뿐입니다. 거취 결단도 없었습니다.
임기를 포함한 정국 안정 방안을 여당에 맡기고, 정국 운영도 당정이 책임질 거라고 했습니다. 당더러 표 단속 해달라는 읍소나 다름없습니다.
국민의힘은 일제히 퇴장해 정족수를 미달시켰습니다.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총리 역시 '조기 퇴진'을 추진하겠다는 말에 그쳤습니다.
당장 '무슨 권한으로 국정을 운영하느냐'는 논란이 따릅니다.
한 대표의 국정 배제 약속과 달리 대통령은, 후배인 행안부 장관의 사의를 받아들여 인사권을 행사했습니다. 국방부는 "국군 통수권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불이 나 산소가 희박해진 방은 문이 열리는 순간 불길이 폭발하듯 터져 나옵니다.
권력의 진공 상태도 비슷합니다. 여권이 정 탄핵만은 피하고 싶다면 '질서 있는 퇴진' 방법과 일정을 서둘러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루오의 '미제레레'에서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말합니다.
'긴 고통의 변두리 동네에서도' '난파당한 선원도' 되뇌입니다.
'내일은 날이 좋겠지.'
12월 9일 앵커칼럼 오늘 '분노의 역류' 였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뉴스제보 : 이메일(tvchosun@chosun.com), 카카오톡(tv조선제보), 전화(1661-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