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동물을 앞서간 건 불이 있어 섭니다.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선물했다 무지막지한 고통을 겪었다지만, 우리 스스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얻어낸 겁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열악한 환경을 변화시켜 문자도 바퀴도 없던 시절, 인류 문명의 토대가 됐습니다. 물론 무기도 만들었죠.
불의 온기는 사람들을 불가에 모으기도 합니다. 이렇게 고마운 불도 조심하지 않으면 큰 재앙이 됩니다.
하늘이 야속할 정도로 전국 곳곳의 산불이 꺼질 줄을 모릅니다.
미국 LA에서나 보던 불길이 전쟁 수준의 국가 재난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국립공원 여럿을 태우고 바닷가까지 밀어닥칩니다.
대한민국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최악의 산불입니다.
"역대 최악의 산불에 맞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장비로 맞서고 있으나 상황은 심상치 않습니다."
30명 가까이 숨지고, 이재민만 4만 명에 육박합니다. 진화 과정의 험난함과 희생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타들어가게 만듭니다.
산불 피해가 이렇게 커진 건 '지형, 기상, 연료'라는 산불 확산 3요소가 겹쳤기 때문입니다.
날은 건조해 낙엽이 바싹 마른 데다, 양간지풍이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되짚어봐야 할 건 정책 실패, 즉 '인재'는 아니었냐는 겁니다.
임도를 줄였다거나 소나무 위주의 '숲가꾸기' 같은 사업이 원인이 됐던 건 아니냐는 거죠. 소나무는 불에 탈 때 활엽수보다 1.4배 더 뜨겁고 지속 시간도 2.4배 깁니다.
국민 혈세를 들여 산불을 키운 꼴이란 비판도 나옵니다. 한번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산불진화 시스템도 문제입니다. 불과 아무 관련 없는 산림청이 소방청을 지휘하고, 화재 이후 다시 산림청 중심의 산불 예산 대책이 반복됩니다. 재난관련 일원화 체계가 필요합니다.
세종대왕은 "천재지변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지만, 대비와 조치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다할 수 있다"고 이미 일찌감치 말했습니다.
매번 터질 때만 관심 기울이는척하다 나중엔 나몰라라 하는 식이 또 되풀이된다면 교훈은 없습니다.
늘 그렇듯 재난상황에 빛나는 우리 국민들, 고통받는 지역에 쏟아지는 위로와 성금이 그나마 힘든 상황을 조금이나마 다독거려줍니다.
모두 힘내 위기를 이겨낼 때입니다. 3월 27일 윤정호의 앵커칼럼, '눈물로는 끌 수 없는 불' 이였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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