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소수서원 옆, 꽁꽁 얼어붙은 죽계천 바위에 붉은 글씨로 공경할 경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밤마다 귀신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풍기군수 주세붕이 새겼더니 그쳤다고 합니다.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이 조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면서 죽계를 피로 물들였던 수백 원혼을 위로해준 것이지요. 거기서 조금 올라가면 위리안치지가 있습니다. 구덩이를 파고 가시덤불을 둘러쳐 금성대군을 가뒀던 옛터입니다.
조국 전 장관이 스스로를 "위리안치에 처해진 죄수" 라고 했던, 그 실체를 볼 수 있는 곳이지요. 그는 자신이 '목에 칼을 쓴 죄수'라며 "캄캄한 터널을 묵묵히 걷겠다" 고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아이 문제에 안이한 아버지" 였다고 했습니다. "내 일에 바쁘다 보니 아이 교육에 무관심했다"고 했지요. 검찰 조사를 앞두고는 "내가 알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일로 곤욕을 치를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내와 자식, 가족이라는 운명공동체에서 자기만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는 듯한 말투입니다. 밖으로는, 애꿎은 죄로 목에 칼을 쓴 순교자를 자처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법은 그가, 아이 교육에 무관심한 아버지도 아니었으며, 고난의 순교자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거리에 내걸렸던 이 플래카드처럼 입시비리 대부분을, 죄질이 불량한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조 전 장관은 세상의 아이들한테는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행복하게 살아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식들은 특권과 편법을 써서 용처럼 승천시키려 했다는 것이, 법이 밝힌 진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조국 사태는, 자신의 운명은 물론 문재인 정권의 명운을 가른 변곡점이 됐습니다.
집권 세력과 친여 세력은 불의와 불공정을 필사적으로 감싸다, 합리적 중도층을 좌절과 냉소와 환멸에 빠뜨려 돌려세웠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정권 재창출 실패와 윤석열 정부 탄생에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조국 사태는 역설적으로, 한국 정치사의 물결을 정의와 공정의 순리로 틀어준 갈림길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도 있듯, 조국 재판은 1심 판결이 나오는 데만 3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문 정부 내내 미적거리는 사이, 나라가 소모적인 다툼으로 얼마나 시끄러웠습니까.
"(거짓이 드러나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비로소 그가, 법적 도의적 책임을 무한으로 져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참회와 속죄의 출발점은 진솔한 고백입니다.
2월 3일 앵커의 시선은 '조국이 앗아간 대한민국의 시간' 이었습니다.
신동욱 기자(tjmic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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