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 남성이 15년 전에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유서를 남기고 숨졌지만, 공범으로 지목된 이들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범죄의 유일한 단서인 유서를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겁니다.
김다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30살 남성 A 씨는 지난 2021년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서에는 A 씨가 중학생 때 친구들과 공모해 후배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했다며 반성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A 씨 변사 사건을 처리하던 경찰은 유서 내용을 토대로 수사에 착수했고 공범으로 지목된 세 명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무려 15년이 지난 만큼 A 씨 유서가 사실상 사건의 유일한 단서였는데, 재판에서는 과연 이 유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원칙적으로 형사 재판에서는 사건 관계인이 판사 앞에서 직접 알고 있는 내용을 증언해야 합니다.
다만, A 씨처럼 사건 관계인이 숨진 경우 예외적으로 유서 등이 증거로 인정되기도 하는데, 이때 문서 작성 과정에 허위 사실이 포함될 여지가 없어야 합니다.
1심은 유서를 믿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판단을 뒤집어 세 사람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시, 유서를 증거로 쓸 수 없다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A 씨가 사건 발생 15년이 지날 때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호소한 적이 없다며, 친구들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가짜 유서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피고인들이 A 씨를 직접 신문할 수 있었다면 기억의 오류나 과장, 왜곡 등이 드러났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사건이 파기환송되면서 서울고법이 다시 심리를 맡게 됐는데, 대법원에서 유서의 증거 능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피고인 모두가 무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YTN 김다현입니다.
영상편집 : 안홍현
디자인 : 박유동
YTN 김다현 (dasam080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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