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잔잔 백옥인데 어기여차 당겨주소…"
봄이면 기장 대변항에서 멸치 털기가 벌어집니다. 어부들이 그물을 힘차게 흔들어 멸치를 털어냅니다. 데치고 말리고 우려내는 신세를 아는지, 멸치들이 그물을 붙들고 마지막 안간힘을 씁니다.
'내가 멸치였을 땐 은빛 비늘이 시리게 빛났었다. 싱싱한 날들의 어느 한 끝에서 별이 되리라 믿었다.'
까만 멸치 속은 똥이 아니라 오장육부입니다.
'오죽 속상했으면 그 창자가, 그 쓸개가, 그 간댕이가 모두 녹아 꼬부라져 시꺼멓게 탔을까.'
아내가 끓는 국물에서 멸치를 집어내 버립니다.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뜨겁게 끓던 그 어려운 시대에도 며루치는 온몸을 던졌다. 싱싱하게 헤엄치던 젊은 며루치떼를 생각하자.'
1960년대생 열에 셋이 고독사를 걱정합니다. 지켜보는 가족도 없이 외롭게 죽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마처 세대'로 불립니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입니다.
'낀 세대' 라고도 불리는 '베이비 붐' 제2 세대가 내년부터 차례로 예순다섯 살이 됩니다. 온몸을 던져 아래위로 보살피느라 진이 빠졌습니다. 그러고도 열에 아홉이 '노후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는 열에 여섯뿐입니다. 저소득층일수록 외로운 죽음을 떠올립니다.
마처 세대는 1인당 국민소득 79달러 때 태어났습니다. 그게 3만6천 달러를 넘어 일본을 앞질렀습니다. 인구 5천만 명이 넘는 나라 중에 6위입니다. 그 비약의 주축이 8백60만 마처 세대였습니다.
고도 성장의 급류와 민주화의 소용돌이를 몸으로 겪었습니다.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도 넘었습니다. 그 사이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 캥거루족이 셋 중 둘에 이르렀습니다. 마처 세대는 은퇴해도 쉬지 못합니다.
'누가 나를 위로하는가. 우리는 서로 위로하며 세상을 버텨왔다. 그만하면 잘 살았다.'
베이비 붐 세대 시인이 스스로 찬사를 바쳤습니다.
'불운과 행운을 함께 가졌던 세대, 쓸쓸하고 찬란하다.'
6월 6일 앵커칼럼 오늘 '멸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였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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