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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와 백건우 2011년 4월6일 윤정희가 파리에서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은 뒤 남편 백건우와 함께 한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제가 생각했던 남자를 찾은 것 같아요. 예술을 하는 순수하고 착한 사람. 제가 럭키한(행복한) 것 같아요." 19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난 배우 윤정희는 생전에 남편 백건우(77)에 대해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주연을 한 것을 계기로 당시 인기 예능프로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는 그런 사람을 만나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음악 세계로 '건반 위의 구도자'라 불리는 백건우는 윤정희에게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기 이전에 착하고 다정한 남편이고 또 친구였다. 윤정희는 독일 뮌헨에서 1972년 백건우를 처음 만났을 당시 자신에게 말없이 꽃 한 송이를 건네던 모습을 이렇게 회고했다. "제 남편이 너무 말이 없었어요. 다른 유학생들은 맥주 마시고 그러는데, 꽃 파는 남자에게 꽃을 딱 사 가지고, 그 말 한마디도 없던 사람이 나를 주는 거예요. 평생 그렇게 꽃은 처음 받아봤어요." 말 수 없고 수줍음 많던 청년은 후에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 묵묵히 그 옆을 지켜왔다. 백건우·윤정희 부부가 오랫동안 거주해온 프랑스 파리의 교민 사회에서는 부부가 늘 손을 잡고 다니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자도 파리특파원으로 일하면서 2018~2019년 백건우의 연주회나 파리 한국영화제 등의 문화행사에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등장하던 모습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이미 윤정희의 알츠하이머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무렵이었는데, 윤정희는 백건우의 연주회 때면 늘 객석의 구석 한편에서 남편의 음악에 말없이 빠져들곤 했다. 윤정희와 백건우 2016년 9월 22일 윤정희와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윤정희 특별전 '스크린, 윤정희라는 색채로 물들다' 개막식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자료 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윤정희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976년 백건우와 전격 결혼을 발표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백건우는 미국의 명문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1969년 부조니 콩쿠르 특별상, 1971년 나움부르크 콩쿠르 우승 등의 경력이 있었지만,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윤정희에 비해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문화행사에서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은 2년 뒤 프랑스 파리의 한 한국음식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운명 같은 사랑을 시작하고 2년 뒤 결혼에 골인한다. '은막의 스타'와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의 결혼은 당대 최고의 로맨스로 두고두고 회자했고 이후 둘은 50년 가까이 함께하며 문화계의 대표적인 '잉꼬부부'로 부러움을 샀다. 백건우는 윤정희 생전에 아내가 영화배우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하곤 했다. "정말 대단한 배우예요. 어떻게 자기 직업에 저렇게 충실할 수 있을까요?" 2010년 5월 윤정희가 주연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개봉을 앞두고 백건우는 마침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브람스 신보를 발매한 참이었다. 신보 발매를 알리는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시'에 대해 "영화에 윤정희의 성격이 많이 투영됐다. 이 감독이 너무나 정확히 인간 윤정희를 꿰뚫어 본 것 같아 놀랐다"고 했다. 윤정희-백건우 부부 2010년 11월 26일 윤정희가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함께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제31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레드카펫을 밟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 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당시 1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윤정희는 영화 '시'에서 홀로 손자를 키우며 늦깎이로 시를 배우는 '미자'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미자'는 윤정희의 본명(손미자)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극 중 '미자'는 실제의 '손미자'처럼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며 서서히 언어와 기억을 잃어간다. 백건우는 아내의 알츠하이머 병세가 심각해지고 송사에 휘말리면서도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20년 슈만 신보 발매와 함께 리사이틀 투어를 했고, 작년 9월에는 스페인 작곡가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 앨범을 들고 돌아와 전국을 돌며 관객을 만났다. "이때까지 음악인으로서 살아남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죠. 이제는 음악을 하면서 나도 좀 즐기고 싶어요. 어느 정도 마음의 자유를 찾은 것 같습니다."(백건우. 2022년 9월 19일 기자간담회) 투어 공연에서는 '건반 위의 구도자'답게 한 음 한 음에 진솔한 고백적 어조를 담아냈다. yonglae@yna.co.kr 백건우 독주회(2022년) [빈체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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