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이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갈등의 불씨로 떠오르고 있다.
29일부터 중앙아메리카 방문에 나선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내달 5일 경유지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매카시 하원의장을 만나는 일정에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매카시 하원의장
(워싱턴 UPI=연합뉴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있는 의회에서 '아일랜드의 친구 코커스' 오찬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3.3.17
일단 중국은 대만판공실과 외교부 채널로 경고장을 날렸다.
차이 총통이 매카시 의장을 만난다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중히 위반한 것이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도발이라는 논리를 들이댔다. 주목할 대목은 중국 당국이 "반드시 결연한 반격 조처를 할 것"이라고 한 점이다.
실제 작년 8월 2∼3일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빌미 삼아 중국군은 즉각적인 대만 봉쇄 군사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위기 상황을 조성한 바 있다.
중국은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주도로 사실상 대만 침공을 염두에 두고 대만 상공을 지나는 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하는 등 일주일간의 도발적인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 후로도 대만해협에서 군함과 항공기로 군사적 도발을 지속했다.
차이잉원-매카시 회동을 계기로 중국이 다시 대만해협의 위기를 고조시킨다면, 이번에는 동북아 불안 상황까지 초래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미 하원의장이 미국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은 권력 서열 3위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차이 총통의 매카시 의장 접견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더욱이 매카시 의장은 2020년 5월 하원의원들로 '중국 태스크포스'를 조직해 대중 공세를 주도했고, 하원의장 취임 직후 '미국과 중국공산당 간 전략 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한 '반중 인사'라는 점에서 중국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대만을 이용해 중국에 경제·정치·외교·군사적 위협을 강화하는 가운데 야당인 공화당 최고위직인 매카시 의장이 '중국 때리기'에 가세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중미 수교국 방문 앞두고 공항서 연설하는 대만 총통
(타이베이 EPA=연합뉴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9일 중미 수교국 과테말라와 벨리즈 방문을 위한 출국을 앞두고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번 중미 순방을 계기로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할 예정인 차이 총통은 연설에서 "우리는 평온하고 자신감이 있으며, 굴복도 도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3.03.29
3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대만 매체들에 따르면 차이 총통은 전날 출국에 앞서 매카시 의장과의 회동 일정을 확인했다.
차이 총통은 "외부의 압력은 대만의 의지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우리는 굴복하지도, 도발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위협에도 매카시 의장을 만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대만의 대(對)중국 정책 기관인 대륙위원회도 "중화민국(대만)은 주권 국가로 우호국과 교류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이며 국민의 기대이기도 하다"면서 중국 공산당이 논평할 권리가 없다고 일갈했다.
중국의 강경 대응 가능성을 의식한 탓인 지 바이든 미 행정부도 가세했다.
같은 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브리핑을 통해 "차이 총통의 이번 미국 경유는 미국과 대만의 오래 지속된 비공식적인 관계, 또 미국의 변하지 않은 하나의 중국 정책과 일치한다"며 중국이 이를 빌미로 대만에 대해 공격적인 행동을 취해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중국에 작년 8월의 위협성 군사 도발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차이잉원-매카시 회동과 그 이후 중국의 선택은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를 앞둔 치밀한 '수 싸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만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 총통과 민주진보당(민진당) 집권 세력은 선거 승리로 정권 연장을 갈망하고 있으며 미국도 이를 지원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지난 8년간 대만을 경원시했던 중국은 이번에는 친중 세력인 국민당으로 정권 교체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원하는 대만 유권자의 표심을 민진당과 국민당 어느 쪽이 잡느냐가 관건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선택이 주목된다.
이들 두고 현재 대만 집권 세력은 중국의 군사적 도발로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 '친미 반중' 구도를 짤 수 있어 총통선거에 유리하다고 보는 듯하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만해협 동부 포사격 훈련 모습
(베이징 상하이=연합뉴스) 중국군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응해 미국과 대만을 동시에 겨냥한 전례 없는 화력 시위를 벌였다. 4일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만해협 동부 포사격 훈련 모습. 2022.8.4 [중국 동부전구 웨이보 계정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그러나 작년 8월 이후 지속된 대만해협 위기 상황에도 작년 11월 실시된 대만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참패한 전례에 비춰볼 때 중국 역시 군사 도발 카드를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중국은 특히 지난 27일부터 방중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마잉주 전 총통에게 국가 정상급 환대를 하며 대만 민심 사로잡기를 시도하고 있다.
사실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로 미국과 중국의 희비가 갈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차이잉원과 마잉주라는 전현직 총통의 미국과 중국 동시 방문을 두고 미중 '대리전'이 치러지는 상황이라는 해석도 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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