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풍성한 몸매를 강조한 웨딩드레스.
지난 6월 영국 마인헤드의 한 웨딩숍 주인인 50대 여성 데비 셸리가 마른 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자 진열한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입니다.
영국 BBC, 미러지 등 외신에 따르면 그는 플러스 사이즈 여성들도 얼마든지 웨딩드레스를 아름답게 입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마네킹을 선보였다고 하는데요.
앞서 2019년엔 영국 런던의 나이키 매장에 통통한 몸매에 꽉 끼는 스포츠 톱과 레깅스를 입은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이 전시돼 화제가 됐죠.
국내에서도 한 패션 브랜드가 일부 매장에 현실 몸매 마네킹을 비치한다는데요.
이랜드가 운영하는 제조·유통 일괄형(SPA) 브랜드 스파오가 다음 달부터 서울 코엑스점과 스타필드 안성점에 한국인 25~34세 남녀 평균 신체 사이즈를 반영한 마네킹을 선보입니다.
기존 의류 매장 마네킹의 키는 남성이 190cm, 여성은 184㎝가량. 여기서 키를 20㎝ 안팎씩 줄여 남성은 172.8cm, 여성은 160.9cm로 마네킹을 제작했습니다. 허리둘레도 남성은 2.3인치, 여성은 5.9인치 더 늘였는데요.
이랜드 스파오 관계자는 "이번 평균 체형 마네킹은 사회가 만든 미적 기준을 흔들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의류 업계에서 시도하는 이런 변화는 바로 '이 운동'에 영향을 받았는데요.
미국에서 시작된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입니다.
우리말로 '자기 몸 긍정주의'로 불리는 '보디 포지티브'는 날씬하고 마른 몸이 아름다움의 기준이던 시각에서 벗어나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가꾸자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체형뿐 아니라 성별, 인종, 외모와 관계없이 내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자는 흐름인데요.
섹시한 모델로 패션쇼를 개최하던 미국 여성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은 보디 포지티브란 소비자 가치를 인정하고 플러스 사이즈 모델, 성 소수자인 미국 여자축구 선수 등 이전과 다른 기준의 모델들을 잇달아 내세웠죠.
또한 미국에선 플러스 사이즈 여성을 위한 의류와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패션 브랜드 토리드가 지난해에만 9억7천350만 달러(약 1조1천618억 원) 매출을 올렸습니다.
특히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한 20~30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보디 포지티브가 확산하며 속옷 업계에도 디자인 요소보다는 편안함과 건강함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생겼는데요.
다수 브랜드가 신체 Y존을 압박하는 삼각팬티나 몸을 조이는 보정 속옷보다는 드로어즈(몸에 붙는 사각팬티)와 브라렛(와이어가 없는 브래지어) 등을 출시해 호응을 얻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를 운영하는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7~9월 브라렛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1%, 여성용 사각팬티 매출은 168% 증가했다"며 "최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자는 보디 포지티브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해 편한 여성 속옷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향이 SNS를 중심으로 만연한 우리 사회 속 비정상적인 외적 기준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현상이라고 분석합니다.
실제 '개말라 인간', '뼈말라 인간' 등의 신조어가 생길 만큼 극단적으로 마른 몸을 추구하는 추세가 문제가 되기도 했죠.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외적으로 정형화된 틀에 맞추기 위한 거식증 등의 비정상적인 노력에 반발해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자는 움직임"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김민자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명예교수도 "1960년대부터 날씬한 외모와 슬림한 룩을 추구하며 극심한 다이어트로 거식증까지 생기게 됐다"며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 건강한 외모를 추구하고 현실적인 이상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일각에선 보디 포지티브를 향해 비만이란 질병의 기준을 미화한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또한 보디 포지티브가 마케팅 대상이 되면서 또 다른 기준을 부여해 평가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뚱뚱해도 늙어도 어떤 몸을 가져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얘기하면 또다시 아름다움이란 가치로 모든 사람이 귀결돼야 한단 비판이 있을 수 있다"며 "다양한 몸이 존재한다는 인식 등 보디 포지티브의 가치를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은정 기자 이소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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