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대만의 전현직 총통이 각각 중국과 미국을 방문한 가운데 그 양태가 대조돼 주목된다.
마잉주 전 총통은 국가 정상급 국빈으로 요란한 대접을 받지만, 차이잉원 총통은 미 행정부의 정식 의전을 받지 못한 채 '뒷길 행보'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1일 전했다.
美 뉴욕 롯데호텔에 도착하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중앙아메리카 방문에 나선 차이잉원 대만 총통(가운데)이 29일(현지시간) 경유지인 미국 뉴욕 맨해튼의 숙소 롯데호텔에 도착하고 있다. 2023.03.30 ddy04002@yna.co.kr
실제 10일간 중앙아메리카 과테말라·벨리즈 방문길에 오른 차이 총통은 29일(이하 현지시간) 경유지인 미국 뉴욕에 도착해 이틀간 일정을 모두 '로 키(low key)'로 진행했다.
특히 뉴욕 맨해튼의 롯데뉴욕팰리스호텔 만찬 연회에서 차이잉원이라는 이름 대신 "아주 특별한 손님"이라고만 언급된 점이 눈에 띈다. 차이 총통은 30일 낮에도 공식 일정 없이 브루클린의 외딴 빵집에 들렀고, 그곳에서 만난 기자와 인터뷰도 거절했을 정도로 외부 접촉을 꺼렸다.
그러나 마 전 총통의 방중 분위기는 이와 사뭇 다르다.
12일 동안 중국에 머물 예정인 그는 27일 타이베이에서 출발해 상하이 푸둥공항에 도착해 항공기 트랩에서 내릴 때부터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큰 영접을 받았다.
이어 곧바로 난징으로 이동해 쑨원(孫文·1866∼1925) 묘(중산릉)를 참배했다.
쑨원은 대만과 중국 모두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1929년 완공된 중산릉에는 2005년 렌잔, 2008, 2009년 우보슝 등 대만 국민당 주석이 참배한 적이 있으나, 대만 전현직 총통으로선 처음으로 참배한 것이다.
이를 두고 마 전 총통이 대만인으로선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난징대학살 희생동포추념관도 방문했다.
마 전 총통은 30일 쑹타오 공산당 중앙 대만판공실 주임 겸 국무원 대만판공실 주임(장관급)을 접견했다. 쑹 주임은 중국의 대만 정책을 실무적으로 지휘하는 사령탑이다.
중국 현지에선 마 전 총통이 쑹 주임의 윗선인 왕후닝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날 것으로 예상하며,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시 주석은 2015년 당시 현직이던 마 전 총통과 싱가포르에서 회담한 바 있다.
中 난징대학살 기념관서 헌화하는 마잉주 전 대만 총통
(난징 EPA=연합뉴스) 마잉주 대만 전 총통(가운데)이 29일 중국 장쑤성 난징시의 난징대학살 희생동포 기념관을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이날 마 전 총통은 "양안은 반드시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만 중화를 부흥시킬 수 있으며, 양안은 반드시 평화를 추구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양측 모두 앞날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3.03.29 ddy04002@yna.co.kr
마 전 총통이 가는 곳마다 환영 인파가 넘친다.
WSJ은 대만의 민심을 얻으려는 중국이 레드카펫을 깔고 환영하고 있으며, 마 전 총통은 중국 소풍을 즐기고 있다고 짚었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중국이 차이 총통의 미국을 경유하는 중미 방문 기간에 맞춰 마 전 총통의 방중을 허용한 것으로 보이며, 이와 관련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중국이 차이 총통의 미국 방문 효과를 희석할 목적으로 마 전 총통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 현지에선 미국 주재 중국 공관들이 시위대를 조직해 차이 총통이 가는 곳마다 확성기 등을 통한 반발 시위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만 국가안보국은 중국 당국이 돈을 주고 시위대를 동원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중국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발했다.
중국 당국 의도는 분명하다.
대만은 중국에 속한 특별행정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의 중국' 원칙이 존중돼야 하며, 대만의 외교 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중 세력인 국민당으로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중국은, 이를 위해 마 전 총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날 회동에서 쑹 주임은 대만 독립은 물론 외세 개입 반대를 강조했고, 마 전 총통은 중국과 대만 모두 '중국인'이라며 일체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차이 총통은 신중 행보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면서도, 실리를 분명히 챙기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우선 미국 경유 기간에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인사를 대면 접촉하지는 않지만, 외교 채널로 미 행정부와 의회 인사와 연결해 정치·외교·군사·경제 지원을 촉구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과 시진핑
[연합뉴스TV 제공]
특히 차이 총통은 이번 기회에 자국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업체인 TSMC를 고리로 미국에 이중과세 방지 합의를 강력하게 요구해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어 보인다.
차이 총통은 아울러 내달 5일 귀국 길에 경유할 로스앤젤레스(LA)에서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을 만나는 일정을 강행함으로써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이를 빌미 삼아 작년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때처럼 대만 봉쇄 군사 훈련을 하겠다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부각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미 행정부도 대만을 거들고 있다.
중국이 차이 총통과 매카시 하원의장 간 만남을 문제 삼고 있으나, 이는 관례에 속하는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중국이 도발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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