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 가운데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애국지사는 이제 5명뿐입니다.
광복회 없이 치러진 광복절 기념식부터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이 촉발시킨 건국절 논란까지.
최근의 역사 논쟁을 바라보는 애국지사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이해선 기자가 강태선 애국지사를 만났습니다.
◀ 리포트 ▶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걸 바쳤던 소년은 이제 희뿌연, 백발의 노인이 됐습니다.
102살 강태선 애국지사.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열다섯 되던 해, 그가 마주한 건 '배움'이 아니라 나라 잃은 '설움'이었습니다.
[강태선]
"'조선인 따위가 말이야. 네가 뭐냐' 이런 식으로 얘기가 나오니까, 한번 싸우자고 해서…"
매일같이 들었던 '조센징'이라는 차별, 상처가 깊어질수록 열망도 함께 커졌습니다.
'민족의 행복은 조국의 독립에서 시작된다'는 걸 깨우친 10대 소년은, 알음알음 동료들을 모아 조직적으로 일제에 항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강태선]
"민족은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또 빼앗아서도 안 된다…"
일제는 독립을 꿈꾸던 열 아홉 소년을 붙잡아 가두고, 고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치안유지법'이라는 이름으로 2년 6개월형을 선고했습니다.
[강태선]
"'누구 만나서 어떤 얘기를 하느냐, 이거 다 나온다'고‥말 한마디에 매 하나씩. (일본 경찰 입장에서)하여튼 간에 바른 말만 하라 이거지"
광복과 함께 풀려난 뒤에야 고향 제주도로 올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고, 자택에는 '애국지사 기림비'가 세워졌습니다.
"국가는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 하지만 그가 꿈꿨던 조국에선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절로 부르지 않는 자가 독립기념관장이 됐고, 광복절 기념식은 아예 반쪽으로 쪼개졌습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지난해 광복절 경축식)]
"왜곡과 친일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인식이 판을 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강태선]
"일본에서 오죽 시달리고 시달리다가 광복이 된 것을, (이제는) 통일될 때까지 뜻을 같이 열심히 하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으로 서훈을 받은 사람은 1만 8천여 명, 생존자는 이제 5명 뿐입니다.
102살의 애국지사는 "광복 정신이 희미해지고 있다"며 "잊혀지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습니다.
MBC뉴스 이해선입니다.
영상취재: 김승우 / 영상편집: 김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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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선 기자(sun@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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