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안전 가옥에서 느긋하게 대통령 연두교서를 보는 남자,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입니다.
갑자기 중계가 끊기고 뉴스속보가 뜹니다. 창 밖 멀리 의회에서 거대한 화염이 솟구칩니다.
그는 급히 지하 벙커로 안내됩니다.
"나는 엄숙히 서약합니다. 미합중국 대통령 직을 성실히 수행하고…"
그는 '지정 생존자(Designated Survivor)' 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삼부 요인들이 모이는 행사 때 은밀히 격리되는 각료지요.
비상사태로 모두 숨질 경우, 나라를 이끌 예비 대통령입니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관례대로 서열이 낮은 장관이어서 거센 도전을 받습니다.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에 맞서 나라를 재건합니다.
지정 생존자가 왜 필요한지 보여 주는 예가 폴란드 공군기 추락 사고입니다.
대통령 부부와 정부 요인, 야당 대선 후보들, 3군 사령관이 모두 숨졌지요.
결국 제1 야당 출신 하원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조기대선을 치르고 대통령이 됐습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에 나선 민주당이 연쇄 탄핵을 예고했습니다.
최상목 부총리를 비롯해 권한대행을 차례로 물려받을 장관들도 시간을 끌면 줄줄이 탄핵하겠답니다.
초유의 권한대행 탄핵만으로도 정부와 국정은 요동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의 신뢰가 폭락하고 우리 경제는 또 어떻게 될까요.
이재명 대표도 "너무 많은 탄핵을 하면 국정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대대행' '대대대행' 탄핵도 불사한다는 건, 무정부 상태를 의미합니다.
며칠 전 국정 마비론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습니다.
"국무위원 다섯 명을 추가로 탄핵하면 국무회의가 의결을 못한다."
최후의 '지정 생존자'라도 숨겨 둬야 하는 걸까요. 대통령 탄핵을 한시라도 앞당기려는 야, 한사코 늦추려는 여…
나라를 송두리째 휩쓸어 버릴 듯한 광풍의 근원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대표의 사법 시간표와, 탄핵 후 대선 시간표를 놓고 벌이는 이전투구,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겁니다.
그 눈에 국민이 보이기나 하겠습니까.
12월 27일 앵커칼럼 오늘 '대대행 대대대행… 탄핵' 이었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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