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소.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지요."
대통령이 심각한 희귀병을 숨겨오다, 눈치를 챈 참모에게 고백합니다. 고심 끝에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에게 병을 알립니다. 재선 도전을 천명해, 중대한 사실을 감춘 죄를 심판 받겠다고 합니다.
"다음은 뭡니까?" "다음은…" "다음은요?"
비난과 난관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해 재선에서 압승을 거둡니다.
주역 발레리나가 새 배역을 신입 단원에게 뺏길까 봐 단장에게 쫓아갑니다. 단장은 "틀을 초월하라"며 일대 변신을 요구합니다.
"관객을 놀라게 하려면, 너 스스로가 놀라도록 바뀌어야 해."
나아가 관객을 사로잡으려면 공감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회견을 준비하면서 참모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정책이든 현안이든 국민과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회견의 성패가 어디에 달렸는지를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그렇듯 대통령은 전에 없이 고개 숙여 '내 탓'을 했습니다. 취임 2주년 보고부터 위로와 사과로 시작했습니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 민생의 어려움은 쉬 풀리지 않아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습니다."
'저와 정부를 향한 꾸짖음도 겸허하게 새겨듣겠다. 저와 정부부터 바꾸겠다'고 다짐했지요.
취임 후 두 번째, 일년 아홉 달 만의 기자회견 역시 첫마디가 사과였습니다.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을 끼쳐 드렸다"고 했습니다. 총선 패배는 "제 국정 운영이 많이 부족하다는 국민 평가"라며 책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멈춰 섰습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정치 공세"라며 반대했습니다. 해병대원 특검법도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국민의 마음에 공감의 불을 지르려면, 더 뜨겁게 가슴으로 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국민 보고도 설명을 과감히 줄이는 게 나았겠습니다.
소설가 토마스 만이 설파했지요.
'공감이란, 자아의 한계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자기 보존을 위해서도 빠뜨릴 수 없는 수단이다.'
대통령은 이제 변화의 첫발을 뗐습니다. 참모들에게 "다음은 뭐가 있느냐"고 끊임없이 물으며 민심에 귀 기울이는 대통령이기를 기대합니다.
5월 9일 앵커칼럼 오늘 '뜨겁게 공감할 때까지' 였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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