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사당국이 키이우 조세당국 책임자 자택에서 압수한 돈다발 [우크라이나 수사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스탄불·서울=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현윤경 기자 = 최근 정부 고위인사 다수를 부패 혐의로 물갈이한 우크라이나가 이번에는 유력 기업가와 전·현직 고위 공직자를 겨냥한 대대적인 부패 단속에 나섰다.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 중요한 이벤트가 될 EU와 정상회의를 앞두고 부패 척결 의지를 과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이날 수도 키이우 조세 당국 수장, 기업가 이호르 콜로모이스키, 아르센 아바코우 전 내무장관 등을 겨냥한 가택 수색을 동시다발적으로 실시했다.
바실 말리우크 SBU 국장은 "부패한 관리와 러시아 협조자, 국가안보 저해 사범들을 겨냥한 수십 건의 조치가 취해졌다"고 말해 이날 부패 적발을 위한 광범위한 단속이 이뤄졌음을 확인했다.
말리우크 국장은 텔레그램에 올린 성명에서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전쟁 상황에서 대담하게도 우크라이나에 피해를 주는 모든 범죄자는 결국 수갑을 차게 될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가택수색을 당한 키이우 조세당국 책임자 대행의 집에서는 미화 15만8천 달러(약 2억원)와 약 1천700만원에 해당하는 우크라이나 현지 화폐 등 거액의 돈다발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수사국(SBI)은 조사관들이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인 이 여성의 집을 수색하는 사진을 공개하고, 그의 집에서는 현금 외에 고가의 보석류, 명품 금시계, 명품 옷들도 발견됐다고 밝혔다.
SBI는 이 세무 관리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세무당국 책임자의 집을 수색하는 우크라이나 수사관들 [우크라이나 수사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SBI는 그가 키이우 국세청장 서리로 받는 급여에 걸맞지 않은 호화로운 생활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합 가치가 100만 달러(약 12억2천만원)에 달하는 키이우 아파트 3채와 20만 달러(약 2억5천만원) 상당의 키이우 근교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며, 굴리고 있는 차량 두 대도 도합 15만 달러(약 1억8천만원)에 이르는 고급차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SBI는 연봉이 8천 달러(약 1천만원)에 불과한 그의 운전기사의 명의로도 10만 달러(약 1억2천만원) 상당의 차량이 등록돼 있다고 덧붙였다.
SBI 조사 결과 근거가 소명되지 않은 이 관리의 자산은 총 140만 달러(약 1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SBI는 그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상당수 개인과 기업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대가로 뒷돈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가택 수색을 당한 콜로모이스키는 현지 주요 TV 채널 한 곳을 소유하는 등 우크라이나 최대 자산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코미디언일 때부터 그의 방송출연을 돕고 2019년 대선 때 그의 선거운동을 지원하는 등 한때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대통령과 거리가 멀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콜로모이스키는 자신이 지분을 보유한 2개 석유 기업에서 벌어진 9억3천만 유로(약 1조2천500억원) 규모의 횡령 사건에 연루돼 있고 탈세 혐의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기업가 이호르 콜로모이스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아바코우 전 장관은 지난 18일 내무장·차관 등 14명이 사망한 헬리콥터 추락 사건의 구매 계약과 관련한 수사를 받고 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사고 헬리콥터는 에어버스가 제작한 기종으로, 2014~2021년 아바코우 전 장관이 내무장관으로 재직하던 때 구매 계약이 맺어졌다. 아바코우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집권여당 '국민의 종'의 다비드 아라하미야 원내대표는 이들에 대한 수사 사실을 확인하면서 "국세청에 대한 수색도 실시됐고 관세청 지도부는 파면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라하미야 대표는 텔레그램에서 "우리는 변화할 것"이라며 "만약 누군가 변화할 준비가 안 됐다면 국가가 그들의 변화를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31년 전 독립선언 후 줄곧 공공 및 정치 부문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부패감시 단체 국제투명성기구(TI)는 2021년 우크라이나의 '부패인식지수'(CPI)가 세계 180개국 가운데 120위라고 밝혔다. 유럽만 놓고 보면 우크라이나의 부패 지수는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최근 들어 전쟁을 지원하는 서방의 신뢰를 얻기 위해 부패와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5개 주 주지사와 국방부 차관, 검찰 부총장, 대통령실 차장, 지역 개발 담당 차관 2명 등 고위인사 10여 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도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인력개편을 가능한 많이 할 것이라고 천명하며 고위 공직자에 대한 단속을 계속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영상연설에서 "유감스럽게도 일부 분야에서 법치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도부를 교체하는 것"이라며 "필요한 만큼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3일 키이우에서 EU와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은 이번 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부패대응을 포함한 EU의 요구 조건을 충족해야 회원가입 협상이 시작될 수 있을 것임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josh@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